외교가 안팎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법 301조 조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경화(사진) 주미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새로운 ‘글로벌 관세’를 부과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후속 조치를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강 대사는 24일(현지시간)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후속 조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대미 협의가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대법원 판결에 대해 우리 정부는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 명확하게 지침이 나오지 않은 상호관세 환급 문제와 관련해서는 “절차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우리 기업에 정확한 정보가 적시에 전달될 수 있도록 미국 진출 기업과 경제 단체 등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를 활용해 이미 발효한 10% 관세를 15%까지 올려 법이 허용하는 150일 동안 부과하는 동시에,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등에 근거한 ‘불공정 무역 관행’ 조사와 ‘안보 위협’ 조사를 병행해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 가운데 외국 정부의 차별적 관행을 조사해 관세를 부과할 권리를 열어두는 무역법 301조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겪은 쿠팡의 미국 내 투자자들이 USTR에 조사를 요청한 근거 조항이기도 하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USTR이 쿠팡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 대해 301조 관련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정부 역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쿠팡을 상대로 비공개 조사를 진행한 미 연방 하원 법사위 역시 이를 앞두고 한국 정부에 이번 사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으며, 쿠팡에 대한 조사 경위와 현재 상황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법사위에 전달됐다.
쿠팡 투자자들은 지난달 미국 기업인 쿠팡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주장하며 USTR에 무역법 301조 조사를 청원한 바 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쿠팡에 대한 한국의 조치는 특히 지독하고 유례없이 해로운 수준”이라며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위법한 조치는 청원인들과 다른 미국 투자자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기업을 파산시키고 시장에서 퇴출하기 위한 공격적인 정부 조치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며 “USTR은 301조에 따른 광범위한 권한을 활용해 한국산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및 한국 서비스에 대한 제한 조치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기업들, 특히 쿠팡이 지속해서 겪고 있다고 주장되는 구체적이고 현재진행형인 차별과 불합리한 대우를 한국 정부가 시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USTR은 통상 301조 청원을 접수하면 45일 내 조사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이에 3월 초에는 한국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지를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조사 개시가 관세 부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미국 관세 정책과 관련해 “산업통상부 등 부처에서 미국 상무부, USTR 등과 긴밀히 소통하며 동향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신에 보도된 무역확장법 232조 신규 관세 부과와 관련해 현재까지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대미 진출기업 미 입국·체류 애로 점검 간담회’를 개최하고 업계 목소리를 들었다. 산업부·외교부·중소벤처기업부가 진행한 이번 간담회는 반도체·배터리 기업의 미국 인력 파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입국·체류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국내 주요 반도체·배터리 기업 8개사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참석했다.
정부는 기업들에 최근 미국 입국·체류 제도 동향을 공유했다. 참석 기업들은 비자 발급, 입국 심사, 현지 체류 절차 등에서의 애로사항과 개선 필요사항을 건의했다. 정부는 이번에 청취한 기업 건의사항들을 바탕으로 미 측과 협의를 지속해 나갈 방침이다. 또, 이번 반도체·배터리 분야를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 중 자동차, 조선 등 업종별 릴레이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