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사법개혁 3법' 강행에 법원장들 "숙의 없었어…심각한 유감"

'사법개혁안' 처리 임박하자 긴급 법원장회의 열어 5시간 토론
"사법부·각계 우려에도 공론화·숙의 없이 국회 본회의 부의"
대법관 증원엔 "4인 증원 가능한 범위…영향 살펴 추가 논의"

전국 법원장들이 25일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상정 처리를 앞두고 "사법부의 우려 표명에도 공론화와 숙의 없이 본회의에 부의된 현 상황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전국 각급 법원장들은 이날 오후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이같은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날 임시회의는 오후 2시부터 6시 40분까지 진행됐다. 박 처장을 포함해 총 43명이 참석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장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번 회의는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정례회의가 아닌 임시회의다. 박 처장은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상정 처리가 임박하자 법원장들과 각급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자 전날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법원장들은 우선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음에도 국민의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를 만들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구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함을 깊이 인식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사법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들이 사법부와 사회 각계의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공론화와 제도 개편의 부작용에 대한 숙의 없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여당의 사법개혁안과 관련해 지난해 두 차례 법원장회의를 통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우려 입장을 낸 데서 수위를 높여 심각한 유감 입장을 밝힌 것이다. 법원장들이 국회 입법 추진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법원장들은 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법안들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짚으며 재차 깊은 우려 의견을 밝혔다.

법왜곡죄는 판사나 검사가 고의적으로 법을 왜곡해 잘못 적용하는 경우 징계·처벌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그간 위헌 논란을 감안해 법왜곡 행위를 규정하는 조문을 대폭 수정해 이날 오후 본회의에 상정한 상태다.

법원장들은 "수정안을 고려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고, 처벌조항으로 인해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등 심대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재판의 신속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에 대해서는 "재판 확정의 실질적 지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며 "소송 당사자들은 반복되는 재판으로 고통받고, 법적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정부 등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인이 참여하는 폭넓은 논의와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사실심 부실화 등의 우려를 재차 밝히면서도 4명 증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12명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법원장들은 "상고심 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나, 단기간 내 다수 대법관을 증원하는 것은 사실심 부실화 등 부작용으로 인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서 가능한 범위인 4인 증원을 추진하고, 사실심에 미치는 영향이나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지를 살펴서 추가 증원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냈다.

법원장들은 "사법제도의 근본적 개편은 돌이키기 어려운 중대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여러 기관과 전문가를 아우르는 협의체를 통해 바람직한 사법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폭넓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사법부는 이들 법안에 대한 우려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특히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사법개혁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전국 법원장들은 작년 9월에도 임시 법원장회의를 열고 여당의 사법개혁 추진과 관련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제도 개편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작년 12월 정기회의에선 당시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에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22일 "헌법 개정 사항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이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 "이번 법안들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생긴 이래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사법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정치권에 재차 숙의를 요청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회의 시작 전 모두발언에서 "법률안에 대한 숙의 과정에서 재판을 직접 담당하는 사법부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왜곡죄법이 이날 오후 본회의에 상정되자 국민의힘은 '사법 파괴 악법'이라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다.

법안은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이 지나고 26일 오후 범여권 정당들의 토론 종결 동의 뒤 표결 처리될 전망이다. 이어 재판소원제 도입법, 대법관 증원안 등 나머지 사법개혁법안도 같은 방식으로 순차 처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