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부터 지역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핵심은 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원천 봉쇄하는 데 있다.
2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시범사업 시행지역 중 한 곳인 광주광역시는 최근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이송 지침을 마련 중이다. 지침의 골자는 골든타임 내에 적정 병원을 찾지 못할 경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직접 ‘우선 수용 병원’을 지정하고 해당 병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 ‘가장 가까운 곳’이 우선... 병원 거부권 사실상 소멸
이번 지침에서 주목할 점은 우선 수용 병원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광주시는 이를 ‘최근 거리 응급의료기관’으로 규정했다. 환자의 상태가 급박해 최종 치료 기관까지 이동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시설의 상황을 불문하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소생술부터 시행하라는 의미다.
지침은 병원의 ‘거부권’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시설 붕괴, 화재, 정전 등 재난 수준의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없는 한, 지정된 병원은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다. 특히 그동안 현장에서 관행처럼 통용되었던 ‘의료진 부재’나 ‘병상 만석’ 등은 더 이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 소생은 ‘가까운 곳’, 치료는 ‘확정된 곳’에서
우선 수용 병원의 역할은 환자를 완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전문 심장 소생술이나 응급 외과적 처치 등 즉각적이고 결정적인 소생과 안정화 조치에 집중한다. 환자가 이곳에서 고비를 넘기는 동안 광역상황실은 수술과 입원이 가능한 ‘최종 수용 병원’을 섭외하게 된다.
이후 구급대는 환자를 다시 최종 병원으로 재이송하며 이때 지정된 최종 병원 역시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구조다. 즉, ‘현장-우선 병원-최종 병원’으로 이어지는 이송 체계를 국가가 관리해 환자가 방치되는 시간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 의료계 반발과 ‘면책권’ 카드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병원 측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병원 강제 지정’이 자칫 또 다른 의료 사고나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진 사이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광주광역시는 의료진을 달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 분쟁에 대해 의료진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책임을 경감해 주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3월 시행 전까지 세부 지침을 다듬을 계획이다.
응급실 문턱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환자들에게 이번 시범사업이 실질적인 ‘생명줄’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