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 정정화/ 파람북/ 2만5000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주권자인 국민은 헌법을 고칠 수도, 법을 제정할 권한도 없다. 투표일 하루만 주권자이고, 나머지 364일은 구경꾼일 뿐이다. 입법권은 오직 국회에만 있고, 국민은 투표로 대표를 뽑는 것 외에는 정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대의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부른다.
언론사 사회부와 국제부 기자 출신으로 강원대 교수를 거쳐 다양한 시민단체와 모임에서 활동 중인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선거로 뽑힌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추첨으로 뽑힌 민주주의, 또는 시민의회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대부터 21세기 캐나다 등에서 실험되고 있는 시민의회의 역사를 추적한다. 예컨대 아테네의 500인 평의회는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1년 임기로 교대해 국정을 운영했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선 현대적 의미의 시민의회가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시민의회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수개월 동안 전문가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숙의한 끝에 정책 권고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책은 1부에서 이러한 시민의회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어 2부에서는 대의민주주의의 민낯과 함께 참여·직접·숙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고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