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유독 시대적 요구와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거울을 예민하게 들이댄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이 역동적 생명력은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어필하는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판사 이한영’은 이러한 비판적 시각의 단단한 뿌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 낸 대표적 사례다.
전통적으로 법정 드라마 속 판사는 대체로 정의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판사 이한영’이 그리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주인공의 회귀와 정의 구현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배우 박희순이 열연한 강신진 판사라는 존재다. 밑바닥에서 성공해 권력 실세가 된 그는 자신의 돈과 권력을 위해 어떤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본격적인 ‘악한 판사’의 등장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 산물이 아니다. 이는 현시점 대한민국 사법부를 바라보는 대중의 서늘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법 감정을 난도질하는 판결은 현실에서 끝없이 이어진다. 초등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교장에게 고작 징역 4년을 선고하며 감형해 주거나, 동종 범죄임에도 성별에 따라 불평등한 잣대를 들이대는 판결은 이제 셀 수조차 없다. 특히 최근 전직 대통령의 내란죄 판결은 압권이었다. 담당 판사는 전두환·노태우라는 명확한 전례는 외면한 채, 뜬금없이 로마 시대와 중세 왕조의 사례를 들먹였다. 고령이라서, 공직에 오래 복무해서, 전과가 없어서 감형한다는 논리에 시민들은 촉법소년도 힘든데 이제 촉법노인까지 감당해야 하냐며 냉소를 보낸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가 내란을 저질렀다면 이는 감형이 아닌 가중처벌의 대상이다. 내란이 실패한 것은 국민의 저항 때문이지, 결코 주모자의 준비가 허술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법부가 내란을 축소하고 동조하는 듯한 행태를 멈추지 않는 한, ‘판사는 죽었다 깨어나야 정신을 차린다’는 드라마 ‘판사 이한영’의 메시지는 환상이 아닌 뼈아픈 교훈이 된다.
그간 드라마 속 검사가 사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역으로 단골 출연할 때도 판사만큼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남겨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은 검사에 이어 판사 역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알아버렸다. 정의로울 것이라 믿었던 대법원장마저 또 다른 강신진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극의 결말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 드라마의 흥행은 반가운 일이나, 더는 사법부의 부정의를 땔감 삼아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세상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