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알려진 생애 정보가 그 명성에 비해 적다는 사실은 위대한 작가의 삶의 빈칸을 채워보려는 다른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 ‘샌드맨’에서 불멸의 꿈 사냥꾼 모르페우스는 셰익스피어에게 글쓰기 재능을 선사하는 대신 꿈에 관한 두 편의 희곡을 받기로 거래한다. 샌드맨에게 헌사된 첫 번째 작품은 ‘한여름 밤의 꿈’인데 이 에피소드에서 셰익스피어의 어린 아들 햄넷이 등장한다. 영국의 온갖 신화적 존재 앞에서 초연을 한다는 설정의 판타지는 극 중 요정 여왕 타티아나가 인도 소년을 탐내는 것처럼 신령스러운 귀부인이 햄넷을 영원의 세계로 유혹한다. 그래픽노블의 이 일화는 그로부터 몇 년 뒤 셰익스피어의 역작 ‘햄릿’의 탄생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노매드랜드’, ‘이터널스’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의 영화 ‘햄넷’ 역시 매기 오파렐이 쓴 동명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앤 해서웨이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아내 아녜스(제시 버클리)다. 장갑을 만드는 장인인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라틴어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 윌리엄 셰익스피어(폴 메스컬)는 그 집안의 딸 아녜스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수재나와 쌍둥이인 주디스와 햄넷, 세 자녀를 가지는데 영화 ‘햄넷’의 작가적 상상력은 아녜스라는 인물로부터 펼쳐진다. 숲에서 자유롭게 자란 아녜스에게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아녜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숲과 대지에 밀착한 삶과 약초를 만들며 외울 주문을 배웠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숲에서 떠밀려 오는 영감과 사랑하는 세 자녀를 향한 불길한 예감을 매일 느끼면서 그럼에도 모든 악재를 피해 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아녜스는 훗날 찾아올 비극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클로이 자오의 영화에서 인물의 심상은 종종 풍경과 같은 곳에 놓여 묘사되곤 했다. 전작 ‘노매드랜드’의 떠돌이 주인공 펀은 원시의 한때로 돌아간 듯한 광활한 사막에서 마지막 남은 외로운 인류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햄넷’은 주술과 예감처럼 실체가 없어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아녜스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축축하고 깊숙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신비로운 숲은 ‘햄넷’의 장면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온다. 아녜스와 그 어머니의 숲에 감도는 모종의 기운은 언어로 확정되지 못하고 모호한 주술로써 구전된다. 한편, 윌리엄은 창작에의 열망과 집필로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에게 찾아온 비극은 윌리엄이 ‘햄릿’을 완성하게 한 불씨가 된다. ‘햄넷’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비통함과 구원에 관한 영화다. 상실에 빠져 허덕이는 그들을 마침내 일으켜 세우는 것은 아늑하지만 정제되지 못한 숲의 주술이 아니라 정교하고 확실한 문학의 언어였다.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