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3법' 입법을 강행하는 가운데 박영재(56·사법연수원 22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27일 행정처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천대엽 전임 처장 후임으로 임명된 지 40여일 만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박 처장은 이날 오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소속 기구인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 위임을 받아 전국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을 총괄하며 국회 등 대외 업무도 담당한다.
박 처장은 이날 취재진에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논의 등을 종합해볼 때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처장직을 내려놓게 됐다"며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사법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 물러나게 돼 여러모로 송구스럽다"며 "부디 현재 진행되는 사법제도 개편 관련 논의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사법부의 지속적인 우려 표명에도 전날 법왜곡죄법(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 상정 처리가 이뤄지면서 박 처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박 처장은 지난해 5월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진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상고심 때 전원합의체 회부 전에 사건 주심을 맡은 바 있어 처장직 임명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민주당 강성 의원들로부터 거센 포화를 맞아왔다.
박 처장이 지난달 첫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했을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퇴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임명을 거절했어야 한다"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에서 빠른 속도로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는 와중에 대외적으로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행정처장이 오히려 국회에서 사법부를 겨냥한 공세의 한복판에 위치해 심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결국 법안 통과도 강행되면서 고심 끝에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는 게 법원 안팎의 분석이다.
사법부 내에서는 지난 전합 판결 당시 주심 대법관 지정은 전산상 형식적으로 정해졌을 뿐인데 법사위에서 계속 공세가 이어지고 부임 직후 개혁을 갑자기 몰아붙인 데 대해 사법행정 책임자로서 부담과 고민이 컸던 것 같아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박 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사법부가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여당에서 추진 중인 사법개혁 법안에 대해선 위헌 우려가 있어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다.
지난 25일에는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긴급 소집해 사법개혁 3법 입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박 처장은 사법개혁 3법과 관련해 "헌법 질서와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법원의 본질적 역할과 기능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법원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으려는 국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법률안에 대한 숙의 과정에서 재판을 직접 담당하는 사법부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처장은 1996년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법원행정처 심의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예전 사법시험 시절 법조 후속세대 양성을 전담했던 사법연수원 교수 등 법원 내 대표적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과 기획조정실장에 이어 차장을 역임하고 2024년 8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지난달 13일 천대엽 전임 처장 후임으로 처장직에 임명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박 처장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면 박 처장은 다시 대법관 재판 업무에 복귀하게 되고, 조 대법원장은 다른 대법관 중에서 신임 법원행정처장을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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