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소방관·경찰 사주를 흥밋거리 삼아 큰 파문을 일으킨 디즈니플러스(+) 예능 ‘운명전쟁49’(포스터) 제작진이 뒤늦게 해당 부분을 편집해서 들어냈다. 문제가 불거진 지 2주가 지나서야 이뤄진 뒤늦은 조치다. 해당 콘텐츠가 전 세계에 공개됐다는 점에서 유가족과 현역 소방관·경찰관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심대하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디즈니+나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만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현행 방송물 심의·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법·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1일 디즈니+에 따르면 ‘운명전쟁49’ 제작진은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내고 “고(故) 김철홍 소방장님과 고(故) 이재현 경장님의 유가족분들을 비롯한 관계자분들의 말씀을 경청해왔다”며 “그 뜻을 받아들여 해당 부분을 재편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의 의견들을 새겨 제작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운명전쟁49’는 무당, 타로술사, 역술인 등 49인의 이른바 운명술사가 모여 여러 미션을 거쳐 운명을 가장 잘 읽어낸 최후의 1인을 뽑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지난 11일 공개된 2화 ‘망자 사인 맞히기’ 미션 내용이다. 당시 제작진은 한 망자의 사진과 생시, 사망 시점 등을 단서로 제시했고, 무속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망자의 사망 원인을 추리했다.
콘텐츠 공개 직후 소셜미디어 등에선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김 소방교의 조카라는 네티즌이 “제작진이 영웅이나 열사를 다루는 것으로 다큐멘터리 취지를 설명해 방영에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디즈니+는 두 차례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유족의 동의를 얻었다며 영상 삭제 등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방공무원노동조합 등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결국 지난달 27일에서야 ‘운명전쟁49’를 제작한 JTBC 황교진·성치경 PD 등 제작진은 이창석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유족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이날 유족과 함께 제작진을 만나 의견을 전달했다”며 “당시 제작진은 유족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기로 합의했으며, 관련 합의는 이미 디즈니+ 미국 본사와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유족은 김 소방교가 담긴 영상을 모두 편집할 것과 공식적인 사과문 게재 등을 요구했다. 이에 제작진은 디즈니+ 미국 본사와 이미 협의를 해서 김 소방교와 이 경장이 담긴 부분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며 다만 편집된 영상이 언제 교체될지와 어떤 식으로 편집될지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문 게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일정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 관련 영상은 삭제가 됐지만 남은 문제는 적지 않다. 특히 OTT에서 공개된 영상물에 대한 심의·규제가 사각지대인 현행 제도 허점이 크게 드러났다. 방송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통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즉각적인 제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OTT는 부가통신사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다뤄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건 같은 경우 심의 대상이 안 될 수 있다.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다루는 콘텐츠는 불법적이거나 유해한 영상, 예컨대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촬영한 영상이나 딥페이크(허위영상) 같은 것만 해당한다.
유족과 소방노조, 경찰청 등이 명예훼손을 근거로 소송을 검토한 것도 이처럼 정부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다. 하지만 이 또한 상당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영상 공개 중단 조치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에 OTT 사업자나 제작사 등에 대한 현실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OTT가 부가통신사업자에 해당해 규제 대상이 안 된다는 지적은 이미 업계에서 10여년이나 지속된 문제”라며 “방송 전파냐, 디지털 통신이냐를 떠나서 방송인과 작가, PD 등이 포함돼 방송의 형식으로 제작되고 유통되는 콘텐츠는 방송으로 포함해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운명전쟁49’는 공공을 위해 헌신한 소방관과 경찰관을 예능 소재로 활용해 공공에 큰 피해를 줬다”며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해 방송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희윤 대중문화평론가도 “미디어 범위가 넓어지고 뉴미디어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점유율이 높아졌는데도 아직도 관련 제도는 제자리걸음”이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OTT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