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파트 스프링클러 시·도별 편차 극심

4만9810개 단지 50.1%가 미설치
제주 86.5% 최다… 대전·경남 順
대부분 설치 의무화 소급서 빠져
은마 등 노후아파트 비극 잇따라
전문가 “자동확산 소화기 확대를”

지난달 24일 오전 6시18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979년 지어진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노후 아파트단지인 이곳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화재 초기 1차로 진화할 설비가 없다 보니 불은 빠르게 번졌다. 화재 발생 당시 화재경보기를 비롯한 안전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화재는 출동 소방관들에 의해 1시간여 만에 꺼졌지만 10대 여학생이 숨지고 주민 3명이 화상과 호흡곤란 등을 겪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현장에서 소방재난본부 화재조사대원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은마아파트 화재 사고는 노후 아파트 단지의 안전 취약성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국 아파트 절반 이상이 은마아파트처럼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전국 아파트 단지 4만9810곳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2만4976단지(50.1%)로 집계됐다. 세대수 기준으로는 1297만4000세대 가운데 668만5000세대(51.6%)가 미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별 편차도 컸다. 소방청의 ‘노후아파트 스프링클러 설비 미설치현황’(2025년 7월1일 기준)을 보면 제주 지역 아파트 단지의 86.5%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대전(80.5%)과 경남(77.8%), 대구(74.1%), 충북(72.9%), 부산(71.4%) 등도 스프링클러 미설치 비율이 높았다. 신축 아파트 비율이 높은 서울과 세종, 울산 지역 아파트 단지 스프링클러 미설치율은 각각 23.2%, 25.1%, 34.6%에 그쳤다.

스프링클러 설치율이 낮은 이유는 제도상 소급 적용이 어려워서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설치대상은 1990년 7월 ‘16층 이상 공동주택의 16층 이상 층’으로 규정됐다. 이후 2018년 6층 이상 건물, 2024년 11층 이상 모든 건축물의 모든 층으로 기준이 확대됐다. 1990년 7월 이전 준공 단지거나, 이후 지어졌더라도 층수 규정에 미달한 건축물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없었던 셈이다.

이런 법적 사각지대가 있는 사이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 단지에서는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화재로 70대 2명이 숨진 부산 해운대구 14층 아파트에도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이 아파트는 1985년 준공됐다. 지난해 8월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서울 마포구 아파트 화재 사고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당 단지도 준공 당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대상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설치를 유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화재방호협회(NFPA)가 2017년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자동 소화 시스템이 있는 건물은 미설치 건물보다 민간인 사망률이 87% 낮고, 부상률은 27% 감소했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모든 공동주택을 한꺼번에 지원하기보다 고령자 비중이 높은 단지나 피해에 취약한 동부터 단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설치가 간편하고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자동확산소화기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동확산소화기는 화염이나 고열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터지며 소화 약제를 분사해 화재 초기 연소 확대를 억제하는 장치로, 가격은 1대당 2만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