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면

2010년 광화문 현판 갈라진 건
목구조 이해 없이 흉내만 낸 탓
한글 현판 달겠다는 당국 발상
조선 역사·문화 부정하는 징표

얼마 전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가유산청장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의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달겠다고 보고하는 자리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공감한다면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2010년 이명박정부 시절 광화문 현판이 갈라진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번 광화문 한글 현판은 갈라지지 않게 잘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말에 기시감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겠다는 발상은 그동안 유지했던 우리 문화유산 정책과 결을 달리하는 것이라 국가유산청장으로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여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뜬금없이 이번 기회에 2010년 갈라진 광화문 현판 문제를 부각함으로써 이명박정부를 공격하는 충성심을 대통령 앞에서 과시했다. 꼭 윤석열정부 시절 무슨 문제만 생기면 어김없이 전 정부 탓을 하던 광경을 다시 보는 듯하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참에 ‘이명박정부 시절’ 갈라졌다는 광화문 현판 문제를 되짚어 보면서 우리 전통 목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광화문 현판은 ‘바닥판’과 ‘테두리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판은 건축물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판재 부분으로 ‘알판’이라고도 한다. 테두리목은 바닥판 주변을 경사지게 감싸 현판이 꽃잎처럼 펼쳐져 보이도록 입체감을 주는 장식재다. 이곳에 각종 문양으로 조각하고 단청을 해 멋을 내는 데 그 역할이 서양 액자의 테두리목과 다를 바가 없다.



광화문 현판의 알판은 가로 4276㎜에 세로 1138㎜ 크기로 원래 한 판이 아니라 아홉 조각의 판재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경복궁을 중건할 1860년대 당시 이 정도 크기의 판재를 한 판으로 얻기 위해서는 최소 지름이 1.5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가 필요했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100점이 넘는 궁궐 현판은 작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광화문 현판처럼 여러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무를 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현판 하나를 만들기 위해 큰 나무를 허비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없던 시절, 톱으로 큰 판재를 켜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톱질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 따로 있었는데 그 기능에 따라 걸거장, 기거장, 인거장 등으로 구분했다. 톱은 목재의 길이 방향으로 켜는 ‘켤톱’과 직각 방향으로 자르는 ‘자름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걸거장은 자름톱을 사용해 목재를 자르는 장인이고 기거장과 인거장은 켤톱으로 목재를 켜 판재나 각재를 만드는 장인이다. 이 중에서 판재를 켜는 장인을 인거장이라 했는데 그 크기에 따라 대, 중, 소 인거장으로 또다시 구분했고 그 일이 힘들기로 유명했다. 이처럼 작은 것 하나까지 장인의 기능이 세세히 구분되어 있었던 것은 인력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당시의 일이 그만큼 힘들고 고도의 숙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로로 된 숭례문 현판의 경우, 알판의 폭이 865㎜, 높이가 2263㎜인데 소나무 한 판으로 되어 있다. 이 알판을 한 판으로 구하기 위해서는 최소 지름이 1.1m에 이르는 소나무가 필요한데 숭례문 현판을 제작했던 조선 초기에는 가능했던 모양이다.

현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판을 짜는 소목장, 단청을 하는 단청장, 글을 새기는 각자장, 글씨에 금박을 입힐 때는 금박장, 현판을 건축물에 매다는 철물을 만드는 장인이 필요하다. 현판의 글씨는 보통 문관 중에서 서예 솜씨가 출중한 사람을 임명하는데 광화문 현판은 특이하게 무관인 훈련대장 임태영이 서사관으로 글씨를 썼다. 궁궐 문의 현판은 궁궐을 지키는 무관이 쓰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 서쪽 문인 영추문, 북쪽 문인 신무문 역시 무관이 서사관으로 현판의 글씨를 썼다.

2010년 현판이 갈라진 이유는 소목장이 짜야 할 현판을 각자장이 만들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현판은 그 구조가 간단해 누구든 만들 수 있을 듯하지만, 목구조를 짜고 맞추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탈이 나기 쉽다. 목재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민감하게 수축하고 팽창하기 때문에 이를 헤아려 현판을 짜야 한다. 당시 광화문 현판을 만든 각자장은 아홉 조각의 판재로 바닥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작 지침을 받고 아홉 조각의 판재를 공업용 본드로 이어 붙여 바닥판을 한 판으로 만들었다. 딴에는 튼튼하게 만든다고 이렇게 한 듯하다. 그러나 목수는 절대로 판재를 접착제로 붙이지 않는다. 테두리목 사이에 끼워져 있는 바닥판은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 자유롭게 늘어나고 줄어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현판은 어떤 것도 여러 조각의 판재를 접착제로 이어 붙여 한 판으로 만든 게 없다. 판재와 판재 사이에는 약간의 틈이 있지만 현판은 지붕 위에 매다는 것이라 멀리서 보면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알판이 아홉 장의 판재로 구성된 덕수궁 대한문 현판에서 지금이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광화문 현판이 갈라진 것은 우리 전통 목구조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적당히 흉내만 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글 현판을 추가하겠다는 문체부 장관은 만주어와 한자를 함께 적은 중국 자금성 현판 사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자금성 현판에 만주어와 한자가 함께한 것은 명나라를 정복해 자금성을 차지한 만주족 청나라가 남긴 정복의 표식이다. 이러한 자금성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흉내만 낸다면 2010년 광화문 현판 균열 못지않은 균열이 우리 문화유산 정책에 생기고야 말 것이다. 문화유산에 관해 아무런 소신 없이 문체부 장관의 지시에 따르기만 한다면, 국가유산청은 그 존재 이유가 없다. 요즘 광화문 현판 논란을 보면, ‘정부조직법’상 문화유산 정책의 책임 부서가 어느 곳인지 헷갈린다.

정말로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단다면,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 스스로 부정하고 낮추어 보는 징표가 될 뿐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