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초등학교 5학년과 성관계를 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미성년자 피해자에 대한 범죄 정황을 포착하고도 수사하지 않은 채 사건을 송치한 사실이 확인됐다. 피의자 측 변호인들이 수사 절차를 문제 삼자 소극적으로 수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 북부에 있는 A경찰서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 제작) 혐의를 받는 20대 피의자 B씨를 1월27일 체포했다. B씨는 2023년 12월 당시 초등학교 5학년(11세)인 아동 피해자 C양에게 사진 여러 장을 전송받아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C양을 간음한 혐의를 받는다.
B씨 휴대전화에는 미성년자들로 추정되는 다른 인물과 메신저로 성적인 사진을 주고받거나, 만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를 나눈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또 다른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있을 것을 의심하고 B씨 측에 여죄에 대한 수사를 예고했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수사 절차상 문제를 강하게 지적하자 경찰은 입장을 바꿨다.
변호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압수물 선별 절차가 정식으로 진행되기 전에 피의자 휴대전화를 멋대로 들여다보며 여죄에 대해 추궁하거나, 변호인에게 통지하지 않고 피의자를 경찰서로 데려가 변호인 조력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찰은 지난달 13일 B씨 측에 ‘여죄를 수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경찰은 B씨에 대해 두 차례만 조사한 뒤 C양에 대한 미성년자 의제 간음 등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B씨를 지난달 24일 기소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기자가 취재를 시작하자 뒤늦게 “여죄에 대해서도 수사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며 “포렌식 결과를 분석해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피고인을 추가 수사해 별건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B씨 측은 ‘이미 압수수색 절차가 끝난 시점에서 별건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다툼의 여지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피의자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던 과정에서 다른 범죄 증거를 발견했다면 즉시 법원으로부터 별도 범죄 혐의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경찰은 압수수색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이 같은 절차를 밟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또 다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혐의점을 포착했음에도, 이에 대해 수사할 적기를 놓친 셈이다.
통상 경찰은 실무 관행상 송치가 끝난 뒤에도 피의자 여죄를 수사해 왔다는 게 A경찰서 측 해명이다.
그러나 최근 법원이 디지털 증거 수집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본죄에 대해 수사하다가 발견한 여죄 증거에 대해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을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본죄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에서 별건을 발견했을 때 발견 즉시 별건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는 게 원칙”이라며 “추후에 ‘본건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범죄 혐의점을 발견했다’며 별건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면 추후 법원이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미성년자 간음이나 성착취물 제작 등의 범죄에서는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죄 수사를 많이 하는데, 원래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와 관련성 여부를 많이 다툰다”며 “판례도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면 ‘성명불상의 피해자’에 대한 범죄라고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해 놓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