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도 버거운데 유가마저… 韓 ‘호르무즈 리스크’ 예의주시 [美, 이란 공습]

중동 사태에 불확실성 가중

원유 70%·LNG 20% 중동에 의존
OPEC+, 하루 20만배럴 증산 합의
국제유가 9% 뛰어 배럴당 79달러
장기화 땐 해상운임 급등 ‘3중고’

당국선 ‘컨틴전시 플랜’ 가동 방침
국내 비축유 210일분 확보 상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세계적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우리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중동산 비중이 높은 만큼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에너지 수급 불안정이 심화할 수 있다. 또 유가를 비롯해 물가와 환율, 해상운임 등이 줄줄이 오르며 연관 산업과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란 공격에 불타는 유조선… 봉쇄 이후 민간 선박 4척 피습 1일(현지시간) 팔라우 선적 유조선인 스카이라이트호가 호르무즈해협과 이어지는 오만 인근 바다에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여 있다. 영국해사무역기구 등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민간 선박 4척이 공격받아 승조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AFP연합뉴스

산업통상부는 2일 현재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전날 호르무즈해협을 운항 중이던 HMM 컨테이너선 1척이 무사히 이 지역을 빠져나와 안전하게 운항을 이어가는 등 현재까지 우리 측 유조선과 LNG선 운항 과정에서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직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밝혔고, 현재까지 해협 인근에서 민간 선박 4척이 공격받아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는 등 해협 주변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에도 에너지 공급 문제와 중동 수출 차질, 유가 불안 등 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약 27%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다. 유조선 통항 구간이 10㎞ 안팎으로 좁고 대부분 이란 영해를 지나기 때문에 봉쇄되면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의 70.7%,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호르무즈해협이 공식적으로 봉쇄되지 않더라도 민간 선박 피격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선박들이 운항을 기피해 회항하거나 대기하는 등의 움직임이 보인다”며 “이에 따라 운항이 지체되고 운항 비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우회 루트를 활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50∼80% 상승하고, 육로 운송과 통관 절차로 운송 기간도 3∼5일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해당 지역에서는 보험료가 최대 7배까지 할증된 사례도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공습 이전부터 중동 항로 탱커 운임이 약 40% 상승했다”며 “해협 봉쇄가 공식화되면 운임과 보험료가 동시에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JP모건 등 글로벌 분석 기관들은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거뜬히 넘길 것으로 보는데, 이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파가 엄청날 전망이다. 2일(현지 시간) CNBC 등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5.55달러) 오른 배럴당 72.57달러를,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약 9%(6.54달러) 급등한 79.41달러까지 치솟았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4월부터 하루 20만6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지만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길어지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허 교수는 “OPEC+가 증산을 해도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원활치 않으면 실제 수출 물량이 제한돼 공급이 불안해진다”며 “유가가 100달러를 넘길 경우 (석유화학·항공·해운 등) 국내 관련 산업의 비용 상승 압력이 대단히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자연스레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석탄회관에서 열린 중동 정세 관련 에너지상황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정부도 중동 사태 전개를 면밀히 주시하며 긴급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이호현 2차관 주재로 에너지 수급 점검 회의를 열고 중동 사태가 국내 원유·LNG 도입과 전력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기후부는 한국전력과 발전 5사 등 전력 공기업과 함께 ‘에너지비상대응반’을 가동해 중동 정세와 에너지 수급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필요할 경우 비축유 방출과 대체 물량 확보 등 컨틴전시 플랜(상황별 대응계획)을 가동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해 기준 비축유 1억배럴을 확보했고, 민간도 약 9500만배럴을 비축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일일 순수입량 대비 210일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비축유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단기적인 유가 급등에 대응할 수 있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서아프리카 등 비중동 산유국과의 조달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5대 금융그룹인 KB·신한·하나·우리·NH농협도 외환과 채권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중동 진출·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우대금리 대출과 만기 연장 등 긴급 금융지원을 시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