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 안해 담백한 옛날 통닭… 어릴적 따뜻한 추억 소환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서울닭집

집 근처 시장골목 50년 노부부 노포
가마솥에 튀겨낸 황금빛 프라이드
기름 먹은 종이봉투 정겹게 느껴져
화려하지 않지만 자극없이 순수한 맛
그옛날 아버지가 사왔던 치킨 한마리
네 가족 오손도손… 사랑을 먹었다

아버지의 퇴근길은 늘 기름 냄새가 따라왔다.

종이봉투 속 따끈한 통닭 한 마리는, 네 식구의 저녁을 단숨에 환하게 만들었다.

시장 골목의 노포에서 시작된 그 바삭한 기억은 프랜차이즈의 시대를 지나 지금까지 이어진다.

한 마리 치킨 안에는 한 가장의 하루와 한국 외식 산업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서울닭집 프라이드 통닭

◆아버지의 퇴근길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은 유독 과묵했던 것 같다. 재단사였던 아버지는 일반 직장인들보다도 퇴근 시간이 늦었다. 늘 무뚝뚝했지만 조금 일찍 집에 오는 날엔 한손에 치킨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참 좋았다. 사실 치킨보단 그저 자기 전에 아버지를 한 번 더 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동네엔 치킨집이 많았다. 지금은 사라진 프랜차이즈부터 개인 호프집, 시장 통닭집까지 다양하고 정감 가는 치킨집들은 아버지들 퇴근 시간에는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투명봉투에 들어 있는 치킨무와 치킨집 특제 소금, 그리고 기름을 머금은 종이봉투는 지금의 화려한 치킨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수수함은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네 가족이라 한 마리로는 부족하고 두 마리로는 애매했던 치킨은 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보로 우리는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치킨을 먹은 건지 사랑을 먹은 건지, 한겨울 내복 바람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상 위에 올려놓고 먹던 그 치킨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서울닭집 프라이드 통닭

◆시장 통닭, 서울닭집

평소에는 집에서 배달로 치킨을 시켜먹지만 종종 어린 시절 옛날 치킨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슬리퍼 차림으로 편하게 찾는 곳이 있는데 바로 집 근처 시장 안 골목에서 5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서울닭집’이다. 이곳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다. 예전 시장이 엄청 활기차던 그 시대부터 조금 한적해진 지금까지 여전히 손님들을 줄 세우며 통닭을 튀기는 곳이다. 생닭도 판매하는데 사람들은 생닭보다는 프라이드 통닭을 사러 주로 이곳을 찾는다. 어릴 적 줄기차게 먹었던 이곳 프라이드 통닭은 프랜차이즈 맛에 길들어 잠시 잊었다가 불혹의 나이에 다시 생각이 난 요즘엔 종종 찾고 있다. 멋들어진 포장 상자가 아닌 종이봉투에 감싸져 있는 통닭을 집에 들고 오는 그 기분은, 마치 예전 아버지의 마음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따뜻하게 다가온다.

서울닭집의 닭은 크기에 따라 8000원과 1만원으로 가격이 달라진다. 8000원짜리도 양이 상당히 되는 편이라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 우리 네 가족은 이 한 마리로도 양이 충분한 감이 있다. 세월이 느껴지는 가게를 들어서자 노부부가 열심히 닭을 튀기고 있다. 할아버지는 손님을 받고 할머니는 요리 담당이다. 얼마나 같은 일을 반복했을까. 노릇하게 튀겨진 닭의 빛깔이 마치 황금색 같다. 가마솥에서 감으로 튀기는 저 통닭의 자글거리는 소리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데, 작은 가게 안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문득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노포가 가진 매력은 우리를 그 시대의 순간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에 도착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 봉투를 여는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염지하지 않은 서울닭집의 통닭은 어쩌면 뻑뻑하고 우리가 아는 그 맛이 덜 올라오지만 아이들과 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맛이다. 프라이드 말고 양념도 인기가 많은데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다. 그저 시장 통닭은 프라이드가 근본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신념 때문이다. 역시 우리 네 가족은 이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했다. 뼈를 정리하며 저 멀리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가족끼리 오손도손 모여 먹던 어린 시절 그 짧은 순간이 또 머릿속에 떠올라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기억이 오래 남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가져본다.

 

서울닭집 외관

◆프라이드치킨의 역사

우리나라 프라이드치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음식이 아니다. 1977년 서울 명동에 문을 연 림스치킨은 압력 튀김기를 도입하며 프랜차이즈형 치킨 모델을 확산시켰다. 고온, 단시간 조리, 육즙을 가두고 표면을 바삭하게 만드는 기술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식감의 기준이 이 시기 형성됐다. 페리카나와 맥시카나 브랜드들은 치킨을 ‘동네 음식’으로 만들었다. 가맹 시스템은 조리 기술을 표준화해 1980년대 중반 양념치킨이 대중화됐다.

고추장, 마늘, 설탕을 활용한 소스는 미국식 프라이드치킨과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튀김 위에 소스를 입히는 발상은 단순한 응용이 아니라, 우리만의 재해석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이 급증하면서 치킨 전문점도 함께 늘어났다. 조리 공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재현성이 높다는 점은 창업 아이템으로서 강점이었다. 전문 요리사가 없어도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치킨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무렵 ‘치맥’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됐는데 튀김기 앞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던 통닭과 배달 오토바이의 불빛은 치킨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방불케 했다.

 

■마카로니를 넣은 치킨 롤 만들기

마카로니를 넣은 치킨 롤

<재료> 닭가슴살 1개, 피자치즈 30g, 밀가루 조금, 빵가루 30g, 계란물 50g, 소금 1g, 베이컨 1장, 바질 1장, 삶은 마카로니 30g, 돈가스 소스 100㎖, 생크림 50㎖.

<만드는 법> ① 마카로니는 다진 베이컨과 바질, 피자치즈에 버무려 뭉쳐준다.② 닭가슴살은 펼친 뒤 두들겨 소금간을 해준다. ③ 닭가슴살에 마카로니를 채워 돌돌 말아 이쑤시개로 고정한 뒤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묻혀준다. ④ 노릇하게 튀긴 뒤 반으로 잘라준다. ⑤ 돈가스 소스와 생크림을 섞어 끓인 뒤 튀김과 곁들여준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