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빈곤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닌 ‘성적표’로 취급받고 있는 가운데 가난의 책임을 사회적 구조보다는 개인의 의지 탓으로 돌리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빈곤 원인 조사 결과… 응답자 89.6% “개인 노력 부족이 핵심”
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공동 발표한 ‘2025년 제20차 한국복지패널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빈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복지인식부가조사에 참여한 2661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우리 국민 대다수는 가난의 책임을 사회나 환경보다는 개인의 의지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뚜렷했다. 전체 응답자의 89.6%가 빈곤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개인의 동기와 노력 부족’을 꼽았다. 국민 10명 중 9명은 가난을 본인의 불성실함이나 의지박약에 있다고 믿는 셈이다. 가계 관리 소홀이나 절약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한 비율도 88.3%에 달해,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의 관리 능력 부재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 소득 수준별 인식 격차 뚜렷… 저소득층은 구조적 한계 더 크게 체감
주목할 점은 가구의 소득 수준에 따라 빈곤을 응시하는 눈길이 확연히 갈린다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일반 가구는 90.2%가 노력을 빈곤의 핵심 요인으로 봤다. 특히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37.8%에 달했다.
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저소득 가구에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7.9%에 그쳤다. 일반 가구와 약 10%포인트의 격차를 보인 것이다. 절약 부족을 빈곤의 결정적 원인으로 보는 시각 역시 저소득 가구(30.3%)가 일반 가구(40.0%)보다 훨씬 낮았다. 이는 풍족한 환경에 있는 이들이 개인의 습관과 의지를 강조하는 사이, 저소득층은 아무리 아끼고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타고난 재능 부족 지목은 62.8%로 상대적 저조… 빈곤을 ‘선택의 결과’로 보는 시각 우세
반면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이 부족해서 가난하다는 인식은 62.8%로 다른 항목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특히 이를 “매우 중요한 원인”으로 꼽은 비율은 12.0%에 불과했다. 우리 국민이 빈곤을 바꿀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기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실천에 따른 결과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저소득층에게 ‘심리적 낙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빈곤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의 노력 탓으로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는 경제적 취약 계층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그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든 가난의 굴레를 단순히 게으름의 결과로 치부하는 시각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자활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사회적 안전망과 구조적 개선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냉정한 시선에서 벗어나 빈곤의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