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사법연수원 16기) 대법관이 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일 퇴임했다. 노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며 이런 시기일수록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일방 처리 등 전례없는 사법개편 움직임 속에 법원을 떠나는 그는 “설마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겁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때까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노 대법관이 후임 대법관 후보자가 지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임해 대법원 재판부(소부) 구성은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 대법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던, 이제는 익숙해진 법복의 무게를 내려놓으려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대법관으로 취임하면서 ‘제가 다루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사건 기록에 당사자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기록의 행간에서 법리와 사실이라는 엄중한 기준을 놓지 않으며 최선의 정의를 찾고자 노력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법관은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를 바로 보면서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며 “그렇지만 변화하는 시대에도 포기할 수 없고 지켜내야 하는 핵심적인 가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판결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법률의 해석에는 사법의 본질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가 ‘법의 지배'’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고 설명했다. ‘법의 지배’는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인 ‘법에 의한 지배’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법치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며, 과거 왕정 시대 왕권에 대한 법의 우위를 강조한 데서 출발했다.
노 대법관은 최근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회적 갈등은 법정 안으로까지 깊게 들어와 있다고 언급하며 “특히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누군가 ‘정치의 사법화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은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며 “사법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한쪽의 비난과 공격을 피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서도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 내야 한다”며 “법관에게 용기라는 덕목이 점점 더 크게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사명감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 본연의 역할과 책무에 집중하고 신뢰와 지혜를 모은다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사법부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 대법관은 “우리 사법부의 디딤돌은 사법권의 독립과 국민의 신뢰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법관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나 혜택은 더더욱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권의 독립은 “오직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해 궁극에는 국민의 법적 평화와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끊 임없는 자기반성과 함께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노 대법관은 “설마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겁지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존경을 받을 때까지 노력해달라”며 “저도 법원 바깥에서 한없는 응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1990년 법관 생활을 시작한 노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교수,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서울북부지법원장 등 법원 엘리트 코스를 거쳐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 3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후 2022년 5월 노정희 당시 대법관의 후임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임명돼 2022년 지방선거와 2023·2025년 대선, 2024년 총선 등 전국 단위선거의 관리를 총괄했다.
노 대법관은 민사·형사·국제사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전문성과 재판 실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는다. 대법원에서 사법정보화연구회장, 형사법연구회장, 국제거래법연구회장, 국제분쟁해결시스템연구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민사소송법학회장으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