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새 상품만 고집할 필요 있나요? 약간의 사용감(스크래치)만 감수하면 매장가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게 중고 명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지난 주말 서울 구구스 용산파크타워점에서 만난 최씨(20대)는 중고 명품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프라다 ‘사피아노 탑핸들 백’을 온라인에서 예약하고 실물을 확인하러 매장을 찾았다고 했다. 최씨는 “명품을 꼭 백화점에서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믿을 수 있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중고도 좋은 선택지”라고 말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물건을 다시 사고파는 리커머스(중고 거래) 시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명품 브랜드의 반복적인 가격 인상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진 영향이다. 여기에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청바지·운동화 등 패션 아이템을 ‘구제’로 소비하는 문화가 명품 시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국내 중고 시장 규모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2025년 43조원까지 커졌다고 추정했다. 이는 2025년 전체 소매시장 규모인 521조원의 7.3% 수준이지만, 성장률은 43%로 소매시장(1.2%)을 크게 앞섰다.
한번 거래에 수천만원까지 오가는 중고 거래를 사람들이 뭘 믿고 하는 걸까. 관건은 ‘정품 여부’다. 중고 명품 플랫폼의 감정·보증 체계 고도화 및 신뢰 확보가 향후 시장 성패를 좌우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
◆ 중고 명품 시장 거래 1순위는 가방, 최근엔 하이엔드 주얼리로 확대
중고 명품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한 품목은 단연 ‘가방’이다. 샤넬의 클래식 플랩백, 에르메스 버킨백 등은 반복적인 가격 인상과 제한된 공급으로 중고 시장에서도 높은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샤넬은 대표 제품 클래식 맥시 핸드백 가격을 기존 1892만원에서 2033만원으로 7.5% 인상했다. 에르메스도 버킨백과 켈리백, 콘스탄스 등 가방 가격을 2~7% 올렸다. 롤렉스는 새해 첫날 주요 제품인 서브마리너 오이스터 41㎜의 가격을 1554만원(5.7%)으로 인상했다.
이들 제품은 소위 ‘오픈런’을 하거나 구매 이력이 쌓이지 않으면 구매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부터 ‘새상품급’ 중고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
일부 인기 모델은 중고 시장에서 오히려 웃돈이 붙는 현상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다. 실제로 올해 1월 구구스에 매입된 S(민트급)등급 버킨백은 4300만원에 재판매됐다. 해당 제품 국내 매장가는 1900만원으로, 2400만원의 프리미엄이 형성된 셈이다. 입고와 동시에 ‘보고구매’ 서비스로 연결돼 즉시 판매가 이뤄졌다.
다만 모든 제품에 웃돈이 붙는 것은 아니다. 동일 모델이라도 보증서 유무, 박스 보관 상태, 마모 정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에 대해 구구스 관계자는 “에르메스 가방은 구매 이력과 긴 대기 기간이 필요해 중고 시장을 찾는 수요가 많다”면서도 “특정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프리미엄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매장가 대비 약 30% 저렴한 수준에서 거래된다”고 말했다.
최근엔 시계·주얼리 등 하이엔드 제품 거래가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 구구스 거래 데이터 분석 결과, 카테고리별 거래액은 △가방 △시계 △주얼리 △의류 △신발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 주얼리, 시계 판매 거래 건수는 각각 전년 대비 14%, 11% 증가했다. 재구매 매출 비중 역시 전년 대비 1~2%씩 증가해 각각 17%, 14%를 기록했다.
구매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다. 여전히 30~40대가 전체 소비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20대 이용자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젊은 세대가 중고 명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셀(되파는) 문화에 익숙한 2030세대가 중고 명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 중고 명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중고 구매가 처음일수록 인증된 판매처를 고르고, 제품의 상태나 등급·수선 이력등을 꼼꼼히 체크해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같은 제품이라고 해도 구성품 여부나 제품 마모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어 이를 고려하면 구매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 “불황이 키운 중고 명품 시장…결국 관건은 ‘신뢰’”
중고 거래 플랫폼들은 자체 감정 시스템을 구축해 정품 여부를 다단계로 검수하고, 외부 전문 감정단과 협업해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구구스는 국내 플랫폼 최초로 ‘보고구매 서비스’를 도입했다. ‘보고구매 서비스’는 온라인에서 중고 명품을 고른 뒤,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직접 보고 구매를 확정하는 O2O(온라인 →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다. 구구스 관계자는 “고가 제품일수록 ‘보고구매 서비스’ 이용율이 높은 편”이라며 “실제 제품 상태를 확인한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구구스에 따르면 지난해 ‘보고구매 서비스’ 매출은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이는 전체 온라인 매출의 48%에 해당한다. 이용 고객 수는 49%, 구매 건수는 52% 늘었다.
네이버 기반 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의 자회사 팹(PAP)이 운영하는 ‘시크’는 자체 검수센터를 통한 감정 절차 강화 및 거래 편의성을 앞세우고 있다. 상품 발송부터 검수, 판매, 정산까지 플랫폼 내에서 일괄 처리해 판매자의 번거로움을 줄였다. 구매자 역시 검수를 거친 상품을 받아볼 수 있어 거래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다.
시계 전문 거래 플랫폼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2021년 중고 명품시계 거래 플랫폼 ‘바이버’를 설립했다. 지난해 월 거래액 150억원, 누적 거래액 2000억원을 돌파하며 급성장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 월드에 두 번째 오프라인 매장(쇼룸)을 여는 등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또 다른 시계 특화 플랫폼 ‘왓타임’은 구매부터 감정·수리까지 거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자체적으로 중고 시계를 직매입해 판매하면서, 가품 문제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 소비자 신뢰를 강화하고 있다.
◆ 쓰지 않는 명품 판매하는 사람도 늘어
최근엔 쓰던 제품을 되파는 판매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 “내 자산의 일부”라는 인식이 퍼지며, 필요할 때마다 처분하는 분위기다.
실제 명품 판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찾은 구구스 용산파크타워점는 주택가 상가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규모는 10평 남짓. 외관은 소박했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커튼으로 구분된 감정 테이블과 CC(폐쇄회로)TV 등 보안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 고가 제품을 다루는 만큼 상담과 감정은 외부 시선과 분리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구구스는 전국 29개 직영 매장을 운영하며 생활권 기반 ‘판매 특화형 매입센터’를 도입했다. 서울 갤러리아포레점과 부산 용호W점, 서울 용산점, 잠실리센츠점을 순차적으로 오픈해 프라이빗한 상담과 현장 감정이 가능한 구조를 구축했다. 올해 서울 내 4개점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다.
구구스가 매입센터를 주택가에 여는 이유는 명품 중고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기 위해서다. 구구스 관계자는 “명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장벽이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고객들이 내집 앞에서 명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주택가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 감정과 거래가를 산정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배치돼 있어 매장을 찾는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정품 검수와 거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개인 판매자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며 “앞으로 쓰던 명품을 되파는 거래가 중고 시장의 또 다른 성장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