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김정은의 ‘소총 선물’

소총 받은 北 군간부들 환한 표정
‘일상화된’ 호전성 소름 끼칠 정도
韓·美 미묘한 대북정책 온도차 속
평화 수호 태세 갖췄나 돌아볼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노동당과 군의 주요 간부들에게 전한 ‘특별한 선물’ 관련 사진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진은 이날 평양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시작했다. 선물은 저격용 신형 소총. 딸 주애의 보좌를 받으며 소총을 담은 검은 상자를 전달하는 김 위원장, 건네받은 소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이들의 표정이 환했다. 이틀 전인 25일 최대 정치이벤트 당대회를 마무리한 것을 기념한 것이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겠다.

강구열 외교안보부 부장

사진은 사격장으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당 총무부장 등 연습 사격을 하는 참석자들의 얼굴은 한껏 진지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주애였다. 유력한 후계자인 이 10대 여성의 사격 자세는 그럴싸했다. 북한 매체가 주애의 단독 사진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무기를 다루는 강인한 모습을 노출함으로써 차기 지도자로서 군사적 자질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들을 보며 북한 정권의 정체성을 새삼 곱씹었다. 최고지도자가 부하들에게 전하는 선물로 소총을 골랐다. 당대회를 치른 직후이니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격려의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당 간부, 군 지휘관들은 “두터운 신임과 기대를 심장 깊이 새기고 충성으로 보답하겠다”며 감읍했다고 한다. 정권을 이끄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총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은 것이다.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한 주애의 첫 단독사진을 사격 모습을 담은 것으로 고른 건 앞으로도 북한의 실제는 이러할 것임을 스스로 다짐한 것이라고 보인다.

사진은 ‘호전성’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북한을 두고 호전성을 언급하는 게 새삼스럽긴 하다. 걸핏하면 동해로, 서해로 쏘아대는 미사일을 바라보며 좋아라 웃어대는 김 위원장, 대규모 열병식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대량살상무기는 이제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 담긴 호전성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느낌이다. 반면 소총을 선물로 주고받는 풍경에는 ‘일상화된’ 호전성이 또렷하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올해 설선물이 그릇, 수저 세트와 집밥 재료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북한이 지난달 19∼25일 진행한 9차 당대회에서 남한을 향해 표시한 가장 뚜렷한 메시지는 ‘적대감’이었다. 김 위원장은 “동족 범주에서 한국을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 지속적이고, 뚜렷하게 이어오고 있는 대화, 교류의 제안은 “기만극”이라고 폄훼했다. 또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며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막강한 무력을 존속 기반으로 삼고, 남한을 상대로 적개심을 불태우는 북한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은 존재임을 재차 떠올리면서 이를 상대하는 우리가 스스로 균열 혹은 충돌을 일삼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안보의 한 축인 미군과 대북정책을 두고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최근 반복됐다. 연합군사연습 자유의방패(FS)의 야외기동훈련을 두고 구체적인 횟수와 규모는 합의하지 못했다. 지난달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훈련 중 미·중 공군이 대치한 상황을 두고 우리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항의와 유감을 주고받았다. 일단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정부 내 이견 노출도 있었다. 지난해 말 북한 비핵화 등 대북 정책을 논의하는 한·미 협의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통일부가 거절한 사례로 대표되는 이른바 ‘동맹파·자주파’의 갈등이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탄탄해도 특정 사안을 두고 양측이 갈등을 벌이거나, 중요 정책을 두고 정부 내 이견이 드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이전보다 자주 노출되면 토론, 협의 과정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호전성을 북한이 제도화한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도 급격히 높아지는 와중이다.

평화를 지키고, 그것을 위한 대화, 교류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는 태세가 되어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