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독재의 고통 종식” vs “전쟁 정당화 명분 안 돼”

재한 이란인 엇갈린 반응

“하메네이 제거한 미국에 감사”
반정부 시위 지지자들은 환호
SNS선 히잡 벗은 여성들 영상

“전쟁 범죄·해외 독재” 비판도
현지 가족 연락두절 불안 호소
전문가, 단기간 민주화 회의적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이어지면서 재한 이란인들 사이에서는 ‘기쁘다’는 반응과 ‘전쟁에 대한 우려’가 엇갈렸다. 공습 이후 연락이 두절된 재한 이란인들은 가족들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어 걱정했다.

2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작업자들이 도로 위 육교에 미·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대형 사진을 설치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최고지도자의 사망에 40일간의 공식 애도 기간과 일주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테헤란=AP연합뉴스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란 음식점에서 만난 이란인 A(63)씨는 “아내와 아이가 이란에 있는데,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된다”며 “한국인들과 똑같이 뉴스만 보면서 확인하고 있어 불안하고, 알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유학을 위해 한국에 온 지 6년 됐다는 니우셔(30)는 “일요일(1일) 이후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며 “이란 현지 소식은 어디에 미사일 공격이 이뤄졌는지를 공식 채널로 아는 것 정도이고, 개인적인 연락은 할 수 없어 가족이나 친구들 생사 확인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를 이어왔던 이란인들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죽음을 반겼다.

 

박씨마 재한이란인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에 감사하고 있다”며 “전쟁이기 때문에 희생은 있을 수 있지만 독재자를 제거한 것에 대한 기쁨”이라고 말했다. 니우셔는 “이란 국민은 37년 동안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몇 년에 한 번씩 시위를 해왔다”며 “이란 국민이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항의에도 참혹한 폭력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이 끝난 것에 대한 기쁨”이라고 했다. 그는 “하메네이 제거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나선 것은 그동안 투쟁에서 희생된 사람들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슬람 신정정치 체제에서 억압됐던 여성들이 선두에 섰다.

 

온라인상에는 하메네이 사망 이후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벗거나 하메네이 사진을 불태우는 등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니우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온 시위는 히잡뿐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것”이라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전쟁을 통한 해법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40) 감독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란인들의 마음은 다 같지만, 그것이 전쟁 정당화 명분이 될 수 없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권 개입이자 ‘해외 독재’”라고 했다. 그는 “하메네이에 대한 증오가 전쟁범죄의 책임을 결코 가볍게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이 공식 확인된 가운데 2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 앞에서 한 이란인이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일(현지 시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을 발표하며 4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과 일주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다. 뉴시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강대국이 국제법을 어기면서까지 암살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시민들을 억압한 정치 체제의 상징이 사라졌다는 기쁨이 함께 있는 것”이라며 “1월 내내 이란 현지 시위에서 미국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여서 하메네이 사망이 이란을 바꿀 계기라고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단기간에 민주화가 이뤄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월 시위에서 하메네이 체제에 반대하는 정치적 그룹이 3만5000명가량 죽었다”며 “사실상 권력 공백을 대체할 강력한 민주화 세력이 부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란 지도부 세력이 전면전에 뛰어들면 미국이 지상군으로 들어가야 민주화가 가능한데, 이라크나 아프간의 악몽을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로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성 교수 역시 “이슬람 혁명수비대와 민병대가 굳건해서 곧 민주화가 될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며 “하메네이를 대체할 최고 지도자를 뽑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불매 움직임도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등에서 민간인 사상자를 낳는 것에 대해 반발해 온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행동(행동)’은 전날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공격은 이란의 주권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침략행위”라고 밝혔다.

 

행동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유제품 업체와 관련해 “신제품 출시 다음 날 이스라엘은 이란 여자 초등학교 전교생을 학살했다”며 이스라엘산 원재료가 들어가 있음에 반발했다. 행동은 지난해 이 업체 측에 시민 400여명의 서명과 함께 ‘음료 제품군에 이스라엘산 원재료를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면담 요청을 보냈다.

 

경찰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따른 중동 정세 악화에 주한 이란대사관 인근 경비를 강화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동빙고동에 소재한 주한 이란대사관 주변에 기동대 1개 부대를 배치했다.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한 지난 1월부터 대사관 앞에 2명의 인력을 고정 배치한 데 이은 추가적인 조치다. 경찰은 순찰량을 늘리는 등 혹시 모를 우발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