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1억’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무소속 강선우 의원과 김경 전 서울시의원 사건처럼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사이에 직접 현금이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물게 드러날 때가 있다. 하지만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지는 정치인 후원도 정당한 후원인 동시에 공공연한 ‘헌금성’ 지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와 통화한 전·현직 서울시 구의원 20명은 현역 국회의원에게 “매해 후원을 했다”거나 “(후원금을 낸 당사자가) 알박기 아니냐”고 발언했다. 이들의 증언은 국회의원 고액후원자(연간 300만원 초과) 명단과 지방의원이 지급한 후원금 내역을 비교한 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총선 전 집중되는 후원금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2015∼2024년 국회의원 고액후원자 명단과 6·7·8회 지방선거 후보자 목록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기초·광역의원 후보자 316명이 국회의원 186명에게 총 700건 후원했다. 총선은 20·21·22대(2016·2020·2024년) 세 차례 있었으며 지방선거는 7·8회(2018·2022년) 두 차례 있었다.
연도별 후원 건수와 총액을 따지면 총선이 있는 해에 전년도보다 급증하는 경향이 반복된다. 2015년 42건에서 2016년 79건으로, 2019년 31건에서 2020년 49건으로, 2023년 47건에서 2024년 103건으로 늘었다. 후원 총액 역시 후원 건수 증가에 따라 크게 뛰었다. 총선이 있던 3개 연도 평균 후원금은 건당 349여만원으로 선거가 없는 해의 건당 평균 246여만원을 약 100만원 웃돌았다.
총선이 있는 해마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고액후원금은 4월 총선일 이전에 집중됐다. 한 해 후원금을 총선일 전후로 살펴보면, 선거일 직전까지 비중이 2016년엔 65.4%, 2020년엔 79.9%, 2024년엔 69.7%였다. 선거가 닥친 3월에 후원 건수와 액수가 쏠리는 현상도 보였다. 지방선거 후보자의 고액후원금이 단순한 ‘후원’이 아닌 ‘의도’가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6∼8회 지방선거에서 모두 당선된 서울시 구의원 A씨는 “총선 선거운동 때는 후원금조로 돈을 내야 했다”며 “최고위원 선거 같은 당 관련 선거나 이런(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 알아서들 냈다”고 전했다.
◆“후원금으로 ‘공천 알박기’”
지방의원 후보자의 후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움직이는 경향이 보인다. 7·8회 지방선거 전년도인 2017·2021년 하반기에 각각 당해 전체 후원금의 69.3%, 66.8%가 집중됐다. 이듬해 3월 20대 대통령선거까지 있던 2021년 4분기에는 그해 후원 총액의 46.1%가 몰렸다. 이런 추세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 상반기까지 관측된다. 2018년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분기 후원금이 그해 전체 후원 총액의 55.2%였으며 2022년에는 1분기 후원금이 그해 총액의 38.7%였다.
‘수상한’ 후원은 지방의원 출마자가 자신의 지역구 의원을 집중적으로 후원한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의힘 황점복 경남 창원시의원은 같은 당 윤한홍 의원(창원시마산회원구)에게 8회에 걸쳐 2000만원을 기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준식 전 인천시의원(연수4)은 민주당 박찬대 의원(인천 연수구갑)에게만 790만원을 총 19차례에 나눠 후원했다. 지방선거 후보자가 국회의원 한 명과만 후원 관계를 맺은 경우가 103쌍으로, 이들 사이에 실제 후원 건수는 251건(35.9%)이었다.
지방의원들은 수면 밑 후원도 일상화해 있다고 전한다. 현역 서울시 구의원인 B의원은 자신이 직접 공천헌금을 경험한 적은 없으나 바로 옆 지역구만 해도 돈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동료 시의원이 후원금을 내고 공천을 받았고, 알고 보니 당선된 시·구의원들의 가족, 친지가 쪼개기 후원을 했다”고 지적했다. B의원은 “다른 지역구도 매년 500만원씩 내는 당사자가 공천받더라”며 “그게 ‘알박기’ 아니냐”고 말했다.
◆공천 바라보며 따라가는 후원금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공천관리위원장, 원외 지역(민주당)·당협위원장(국민의힘) 등의 의중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이들에게 후보자 평판 조회 등을 거친다. 국민의힘 윤권근 대구시의원은 8대 대구 달서구의원(7회 지방선거)이던 당시 대구 달서구병 지역구 의원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김용판 전 의원(500만원)뿐 아니라 같은 당 비례대표였던 강효상 전 의원(370만원)에게도 후원했다. 후원한 시기에 강 전 의원은 대구시 달서구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바뀌면 새 의원과 후원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유한국당 소속 박부경 전 울산 남구의원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울산남구을 지역구인 박맹우 전 의원에게 500만원을 후원했지만 이 지역구 의원이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으로 바뀌자 2022년 지방선거 때는 김 의원에 500만원을 후원했다.
2015∼2024년 사이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지방의원은 2017·2018·2022·2023년 4년 동안 9번에 걸쳐 3500만원을 기부한 민주당 김용연 전 서울시의원(강서4)이었다. 7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10대 서울시의회에 입성한 김 시의원은 후원 총액 중 2500만원을 서울 강서구를 지역구로 한 금태섭(강서구갑)·한정애(강서구병)·진성준(강서구을)·강선우(강서구갑) 등 전·현직 국회의원에게 후원했다.
구의원 B씨는 “국회의원이 가만히 있어도 공천을 받기 위해 시·구의원이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경우도 있고 국회의원이 후원금이 모자라다는 얘기를 흘려 은연중에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후원으로 공천받고 그러다 보니 파고들다가 이런 일로 수사받는 분도 생기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