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는 분명 네 대의 피아노가 놓여 있었지만, 홀을 가득 채운 것은 단 하나의 울림이었다.
지난달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아산 정주영 추모 음악회 ‘이어지는 울림’이 열렸다. 이날 공연은 고(故) 정주영 창업회장의 서거 25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뜻을 기리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한국 피아노계의 찬란한 현재를 증명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이 한날한시에 같은 악보를 보며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은 한국 음악계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다.
프로그램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확장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탐색하는 실험처럼 짜였다.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연주자가 마주 앉아 네 손으로 시작한 음향은 두 대로 부풀고, 마침내 네 대로 증식하며 오케스트라적 스케일로 커져 나갔다.
객석을 가득 메운 환호는 우리가 ‘K클래식의 황금기’ 한복판에 서 있음을 또렷이 보여줬다. 그런데 박수가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지금 이 눈부심이 20년, 30년 뒤에도 같은 밀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맞이한 이 황금기는 1980~90년대 한국 사회가 생활 속에 촘촘히 쌓아 올린 음악 인프라와 교육 환경이 맞물려 빚어낸 결과다. 그 시절 가구당 피아노 보급률은 20%를 넘었고, 동네 골목마다 피아노학원이 있었다. 지금은 그때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출산율이 0.7대까지 내려앉으며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1990년대 초 연간 11만~18만 대에 이르던 국내 어쿠스틱 피아노 판매량은 최근 연 2000~3000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저변이 약해진 생태계에서 몇몇 스타가 나타난다 해도 쇠퇴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저출산 사회에서도 음악이 생활 속에 남는 구조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음악 교육을 엘리트 양성의 전초기지로만 보지 말고, 누구나 누릴 공공재로 옮겨야 한다. 학교 안에서 악기를 손에 쥘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늘리고, 악기 대여와 공공 연습실 같은 기반을 지역 단위로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폐교나 유휴 공공시설을 지역 음악 거점으로 전환해 시민합창단과 청소년 앙상블이 상시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드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추모사에서 말한 ‘사람의 가능성’은 결국 사람을 길러내는 토양을 믿는 일이다. 네 대의 피아노가 빚어낸 앙상블이 과거를 기념하는 장면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무대 밖 저변부터 새롭게 다져야 한다.
글·사진=이상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