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어느 날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령이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실시한 2차 핵실험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 국빈으로 파리를 방문 중이었다. 드골은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국 합류 소식을 흐루쇼프에게 직접 알렸다. 이에 흐루쇼프는 “귀하(드골)의 기쁨을 이해한다”면서도 “비용이 무척 많이 들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선배’ 핵 보유국 정상으로서 핵무기 연구·개발과 유지·보수에 천문학적 금액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운 것으로 풀이된다.
드골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핵무기 제조에 박차를 가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국가 위상의 회복과 동시에 안보를 미국·영국에 의존하는 현실의 타개를 위해서였다. 2차대전 초반 독일에 패해 4년간 나치의 점령 통치를 겪은 프랑스는 예전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었다. 1949년 출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프랑스는 미국·영국에 밀려 존재감이 ‘제로’(0)에 가까웠다. 1950∼1960년대 미국은 나토의 주요 현안을 다룰 때 프랑스는 쏙 빼고 영국하고만 협의한 뒤 결정을 내리곤 했다. 분노한 드골은 프랑스의 핵무장이 사실상 완성된 1966년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더는 안보를 미국·영국에 의존하지 않고 프랑스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1991년 옛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 후 프랑스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서방 공동의 적(소련)이 사라진 마당에 프랑스의 핵무기 등 군사력은 용도가 폐기된 것처럼 보였다. 1992년 프랑스 유력 언론인 조르주 발랑스(84)는 ‘세계의 지배자들’이란 저서를 펴냈다. 국내에는 ‘미국 일본 독일이 세계를 지배한다’(1995)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전쟁의 시대는 이제 영영 끝났다”는 전제 아래 경제 대국인 미국·일본·독일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가운데 프랑스는 부차적 역할에 머물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렸다. 오죽하면 저자 발랑스는 “프랑스가 가진 것은 (별로 쓸모가 없는) 군사력뿐”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약 30년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상이 또 바뀌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자주 국방’이 가능한 프랑스는 안보를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독일과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전략적 우위에 서게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일 전 세계를 상대로 “핵탄두 보유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만에 핵무기 전력 증강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마크롱은 “유럽 대륙 차원의 억제 전략을 구상하겠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나토를 경시하는 가운데 유사시 미국을 대신해 프랑스가 유럽 동맹국들에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핵탄두 290기를 갖춘 프랑스는 세계 4위의 핵 전력으로 평가되나 러시아(5459기) 및 미국(5177기)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러시아의 핵무기 공격 위협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이 과연 프랑스를 믿고 따를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말보다 실천’이란 말처럼 앞으로 프랑스의 행동이 중요할 것이다. 프랑스가 미국보다 넓고 튼튼한 핵우산을 펼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