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치 청산? 정국 교착?… 세대교체 갈림길 선 네팔 [세계는 지금]

‘Z세대 봉기’ 이후 첫 총선

특권층 부정부패 조롱한 젊은층
‘대규모 SNS 차단’ 정부에 분노

래퍼 출신 샤, 차기 리더로 급부상
인지도 앞세워 기득권 심판 의지

총리 실각된 올리, 정권탈환 나서
최장수 정당 대표 타파도 도전장

잦은 정권교체 국민 불신 걸림돌
경제·지정학적 리스크 등 과제로

네팔이 5일(현지시간) 하원(275석) 총선을 치렀다. 지난해 9월 정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금지 조치와 부패·특권층에 대한 분노로 발생한 ‘Z세대 봉기’로 집권층이 무너진 뒤 결정된 조기 총선이다. 이번 표심은 사실상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짙다. 특히 이번 선거는 Z세대의 목소리가 일회성 분출로 끝날지, 기존 엘리트 정치를 실제로 교체할지 가늠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네팔 인구의 46%가 24세 미만이라고 전하며, 젊은층이 이번 선거의 분위기를 규정하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2025년 9월9일(현지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 싱하 두르바르 궁전이 정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차단 조치에 격분한 Z세대 시위대로 인해 화염에 휩싸인 모습. 카트만두=AP연합뉴스

◆Z세대 혁명… 조기 총선의 배경

네팔의 정치 불안정은 이전에도 반복됐다. AP통신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15번의 정부가 들어섰고, 의원내각제 하에서 정당들이 이합집산하며 연립정부가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2008년 왕정 폐지 이후 20년도 안 돼 16번째 총리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지난해 9월 사태는 ‘기존의 불안정’과 결이 달랐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정부의 대규모 SNS 차단이었다. “네포 키즈(정치인 자녀)”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특권을 조롱·고발하는 게시물이 SNS상에서 인기를 끌자 정부는 페이스북·왓츠앱·인스타그램 등 주요 플랫폼을 포함해 대규모 차단에 나섰다.


당시 네팔 경찰은 최루탄을 비롯해 물대포와 고무탄을 쏘며 강경 진압을 했다. 경찰관 3명을 포함해 77명이 숨지고 2000여명이 다쳤으며 사망자들 가운데 30여명은 실탄에 맞아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총리실을 비롯해 대법원, 국회의사당, 정치인 사저, 호텔이 불에 타는 등 피해액도 5억8600만달러(약 8650억원)에 달했다.

 

시위는 ‘먹고사는 문제’와 결합해 있었다. 한국 국가데이터처 국제통계 연감에 따르면 네팔의 청년(15∼24세) 실업률은 2026년 20.8%이며, 2020년부터 청년 약 5분의 1이 실업 상태인 상황이 유지됐다. 이 가운데 특권층 자녀의 과시적 소비가 SNS를 통해 확산하자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유혈 사태와 정치적 책임 공방 끝에 정국은 조기총선 국면으로 넘어갔다. K P 샤르마 올리(74) 총리가 사임했고,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로 임명돼 안정화에 나섰다. 네팔은 현재 임시 내각 체제로 선거를 관리 중이다. 선거관리위원회(EC)는 1890만3689명이 유권자로 확정됐고 등록 유권자가 2022년보다 91만여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청년층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발렌드라 샤, ‘구정치 청산’의 얼굴

이번 총선에서는 의원 275명을 선출한다. 165명은 각 선거구에서 직접 선거로 뽑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관전 포인트는 세대교체다. 정부 부패와 특권층을 비판하는 노래를 하는 ‘래퍼’로서 인기를 끌어 무소속으로 수도인 카트만두시의 시장까지 당선된 발렌드라 샤(36), 지난해 반정부 시위로 낙마한 올리 전 총리, 네팔 최장수 정당인 네팔회의당의 가간 타파(50) 대표를 축으로 한 3자 구도가 표심을 어떻게 갈라놓을지가 관심사다.

샤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2022년 무소속으로 카트만두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틱톡 등 SNS를 활용한 선거전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높였다. 검은 정장과 각진 선글라스는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카트만두시장 재임 기간 불법 노점 정비, 쓰레기 문제 대응, 도로 확장 등으로 긍정 평가를 받았지만, 주거·상가 철거를 충분한 고지 없이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샤 시장은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불만을 흡수하며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샤 시장이 지난해 9월 혁명 당시 Z세대로부터 과도 정부를 이끌어갈 임시 총리로 추대됐으나 이를 거절하고 올리의 지역구(자파-5)에서 맞대결을 택해 ‘구정치 심판’ 구도를 부각했다고 전했다.

다만 샤가 선거 기간 보여온 이른바 ‘침묵형 선거운동’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샤는 주요 언론 인터뷰나 공개 토론을 거의 하지 않고, 대규모 유세에서도 짧은 발언만 한 뒤 지지자들과 직접 만나거나 현장을 둘러보는 방식의 행보를 이어왔다. 구체적인 정책 설명이나 장시간 연설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샤 시장을 둘러싼 불안 요인은 또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미국·인도·중국과 네팔 주요 정당을 향해 거친 표현의 비난 글을 올렸다가 약 30분 만에 삭제한 바 있다. 이 일로 인도와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대외 환경에서 네팔의 외교 균형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우려가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5년 9월8일(현지시간) 카트만두 거리로 나온 시위대가 ‘원피스’ 해적 깃발을 내세우며 의회로 진입하는 모습. 카트만두=로이터연합뉴스

◆전 총리 복귀냐, 기성 정당 개혁파냐

지난해 9월 유혈 시위 이후 실각한 올리 전 총리는 네팔 공산권(UML)의 원로다. 그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총리직 재도전에 나섰다. 가디언은 농촌과 당 조직력을 지지 기반으로 두는 올리가 Z세대의 시위를 “정부 전복 음모”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샤 시장이 올리의 지역구에서 맞붙는 구도는 올리에게 조직력 시험대인 동시에 과거 논란을 재소환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팔회의당을 이끄는 타파 대표는 예측 가능한 행보와 제도권 정치 경험이 강점이다.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크더라도 국정 운영은 제도 정치의 틀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Z세대 혁명’ 당시 타파가 당시 집권 연정의 일원임에도 과잉 진압을 비판하며 총리의 책임을 요구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오랜 기간 정치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타파 대표가 ‘기존 정치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제·책임정치·지정학 줄타기 과제

이번 선거에서는 어느 정당이 1당에 오르더라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경우 연정 협상과 정국 교착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네팔 국민은 잦은 정권 교체로 인해 정치 불신이 강하다. 카트만두포스트가 지난달 네팔 국민을 상대로 가장 신뢰하는 정당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45.7%는 “있다”고 답했지만, 54.3%는 “없음·모름·답변 거부”로 응답했다. 특히 “없다(거부)”가 39.6%로 “모름”(13.6%)을 크게 웃돌았다.

차기 총리는 하원에서 단독 과반(138석 이상) 지지를 확보한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네팔에서는 총리가 행정수반으로 실권을 가지며 대통령은 의전상 국가원수 직을 수행한다.

 

자료=세계은행

최우선 과제로는 경제, 특히 청년 일자리가 꼽힌다. 청년층 실업 문제가 시위와 선거 국면을 관통한 만큼, 단기 처방을 넘어 투자·관광·인프라·교육과 노동시장 연계 등 구조 개혁 청사진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번째 과제는 ‘책임 규명’이다. SNS 차단을 계기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유혈 충돌로 번진 만큼, 새 정부는 당시 진압 과정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 장치를 마련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과 관련한 제도적 해법을 내놓지 못할 경우, 반발 여론이 다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 번째 과제는 지정학적 균형이다. 네팔은 인도와 중국 사이의 내륙국가로, 외교·원조·투자·공급망이 외부 변수에 민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트만두포스트는 “차기 정부가 인도의 불안감을 관리하는 동시에 중국의 경계심을 완화하고, 미국에도 ‘특정 진영 편입’이 아니라는 신호를 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