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종교음악의 거장 존 엘리엇 가디너가 자신의 컨스텔레이션 악단·합창단과 함께 22년만에 서울에서 무대를 열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일에는 바흐 b단조 미사, 4일에는 모차르트 미완성 작품 중 레퀴엠과 c단조 미사를 연주했다. 올해 여든삼세인 노익장은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이 기대했던 감동 이상의 희열을 선사했다. 음악으로 신에게 닿으려는 천재들의 열망이 생생히 객석에 전달된 무대였다.
3일 연주회장에선 먼저 바로크 류트(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발현악기)와 포지티브 오르간(작고 이동 가능한 소형 오르간), 그리고 코르노 다 카치아(Corno da caccia·사냥용 호른)와 파곳(바순) 등 평소 보기 힘든 고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주자들이 자리잡은 무대로 나온 가디너가 지휘를 시작한 순간 첫 곡 키리에(Kyrie·속죄의 찬가)부터 합창단 선율이 예술의전당 홀을 가득 채웠다. 이어지는 글로리아(Gloria·영광의 찬가)에선 아리아와 합창이 번갈아 이어졌다. 마지막 무렵의 아리아 ‘쿠오니암’에서 이날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가 찾아왔다. 오르간 주자 옆에 있던 여성 연주자가 사냥용 호른을 들고 일어섰고 파곳 연주자 둘이 따라 일어났다. 이들과 바로크 류트와 오르간의 통주저음(곡 전체를 떠받치는 화음 반주)이 어우러지는 풍성한 반주 위로 베이스가 ‘주만이 유일한 성령’이라는 가사의 아리아를 부드럽게 읊었다. 낯선 악기들이 빚어낸 특별한 음색이 진기한 순간이었다.
장엄하게 마무리된 1부에 이은 2부 크레도(Credo·신앙고백)는 이날 공연의 정점이었다. ‘나는 믿는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크레도 합창과 이중창이 이어지다 엣 인카르나투스(Et incarnatus·성육신)에서 음악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어진 쿠루치피쿠스(Crucifixus·십자가 수난)는 예수의 수난을 간략하면서도 깊게 표현했다. 가디너는 음악을 한없이 낮게, 거의 소멸할 것처럼 이끌었다. 그러다 엣 레수렉시트(Et resurrexit·부활)를 선언하는 대목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일거에 발산됐다.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환희로 거듭나는 극적인 반전의 순간은 통상 연주회에선 경험하기 힘든 순수한 기쁨이 무대에서 흘러넘쳤다.
‘거룩하시도다’가 세 번 울려 퍼지는 3부 상투스(Sanctus·거룩하시도다)에 이어 4부 호산나(Osanna·찬미가)에서는 합창단이 무대 위 자리를 옮기며 더욱 역동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알토가 부른 아뉴스 데이(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에서 간혹 음정이 흔들리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내 마지막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평화를 주소서)이 모든 것을 덮었다. 신을 향한 인간의 마음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가디너의 지휘는 세밀한 음량 조절과 악장 사이의 끊기지 않는 집중력으로 일관됐다. 악보대 위치를 직접 조정하고 합창단의 서는 자리까지 일일이 손을 보는 완벽주의자의 면모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활동 중단과 퇴출의 위기를 지나 2024년 새로 꾸린 컨스텔레이션 합창단·오케스트라와 함께, 노장은 성령이 깃든 듯한 무대를 빚어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번갈아 등장하며 합창과 독창을 넘나들고 오블리가토를 선보이는 장면들은 더없이 다채로웠다. 합창단·독창자·오케스트라, 세 축이 하나로 녹아드는 ‘삼위일체의 무대’였다.
공연이 끝난 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여느 연주회에선 듣기 힘든 ‘브라보’ 함성과 열정적인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긴 터널을 지나야했던 거장은 한참을 고개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음악평론가 이상권은 “가디너야말로 시대연주 문법을 바탕으로 바흐 작품이 지닌 거대한 구조를 명료하게 조망하는 지휘자”라며, “그가 2024년 창단한 컨스텔레이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번 연주는 성부의 균형과 바로크적 발화로 미사 의식의 긴장과 집중을 되살려, 바흐의 음악을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신앙의 언어로 울리게 했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