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은 한 번도 독립국가를 설립하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다. 이들은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등 중동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아 ‘중동의 집시’라 불린다. 중세 십자군전쟁의 영웅 살라딘을 배출한 민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16세기 오스만튀르크에 복속된 뒤로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였지만, 강대국들의 이해충돌과 주변국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다. ‘쿠르드족에게는 친구는 없고 산만 있다’는 오랜 속담에는 떠돌이 민족의 절절한 슬픔이 배어 있다.
쿠르드족의 역사는 수난사 그 자체다. 197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이라크를 약화하기 위해 독립 열망이 가득한 쿠르드족에게 무기와 돈을 대며 반란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란·이라크가 국경분쟁을 끝내자 CIA는 가차 없이 손을 뗐다. 그러자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쿠르드 지도자가 미국에 “파멸을 막아달라”라고 애원했지만, 당시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정보기관의 공작은 자선사업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쿠르드족이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였는데 4년에 걸친 후세인의 잔혹한 복수로 18만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