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총재 방북 당시 수행원으로 참여해 보좌 역할을 했던 황엽주 교수를 만나 당시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아내와 함께 1985년 중국 정부 교육부의 초청을 받아 외국인 초빙교수로 영어를 가르쳤고, 중국인민대학에서는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객좌교수로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강의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문선명 총재의 평양 방문은 어떻게 성사되었나.
문 총재는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원론인대회’를 주관하며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 환담했다. 냉전 종식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 직후 총재는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다.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 박경윤 씨가 김일성 주석과 교분이 있었는데,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이 그를 통해 뜻을 전달했다. 김 주석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서 방북이 성사되었다. 문 총재는 베이징 공항 귀빈실에서 중국 공안당국의 각별한 영접을 받은 뒤, 중국 정부에 감사를 표하고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냉전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방북 추진은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금전적 비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원하던 김일성 주석의 의지와 북한의 문을 열어 냉전 질서를 넘어가려던 문 총재의 뜻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평양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나.
사전 조율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일정이어서 긴장감이 컸다. 인민대회당 회담에서 문 총재가 “주체사상만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하나님주의와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말했을 때 수행원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나 참사랑의 정신으로 살아온 총재의 태도는 언제나 부드럽고 포용적이었고, 일정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북한 측은 다음 일정을 거의 알려주지 않아 우리는 언제 김 주석을 만나는지조차 모른 채 안내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김일성 주석의 태도는 어땠나.
매우 정중하고 친절했다. 오찬 자리에서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설명하며 권했다. “이것은 어느 강에서 잡은 쏘가리로 끓인 탕이다”, “순덕 샘물은 시아누크가 마셔보고 페리에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는 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했다. 특히 “문 선생이 부시와 친하다고 들었는데 나를 미국에 한번 초청해 보라고 해보라”는 말은 미국 워싱턴타임스 특종이 됐다.
오찬이 끝날 무렵 문 총재는 김 주석의 손을 잡아 들어 올리며 평양 사투리로 “주석님, 우리는 이제 형제가 되었시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오랜 원수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회담 이후 내부 평가는 어땠나.
우리는 ‘원수도 사랑으로 이긴다’는 가르침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수행원들 모두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한국 정부로부터 특별한 평가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북방 외교가 열리면서 한·러, 한·중 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전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남북 교착 상황을 보며 어떤 교훈을 얻는가.
동양에서는 천지인이라는 말을 한다. 하늘의 때가 열려도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천륜의 도리를 받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