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대가 대산(大山) 김석진(金碩鎭·1928~2023년) 선생 3주기 추모식이 7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다. 대산은 난해한 유교 경전인 ‘주역(周易)’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중의 언어로 풀어낸 재야 동양철학의 거목이다.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의 가르침은 늘 새롭게 다가온다. 국가 운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지도자는 어떤 마음으로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가. 혼란의 시대일수록 그의 통찰이 더욱 또렷해진다.
대산은 여섯 살에 조부에게 한문을 배우기 시작해 평생 동양 고전을 탐구했다. 스승인 야산(也山) 이달(李達)에게 주역을 익히며, 점서로 알려진 주역을 변화의 철학이자 상황 판단의 원리로 재해석했다. 본래 주역은 본문 격인 경(經)과 해설서인 전(傳)으로 이루어지며, 그 중 경은 64괘(卦)로 구성된다. 공자(孔子) 학통에서 형성된 해설체계인 ‘십익(十翼)’을 거치며 철학과 수양의 경전으로 격상 되었고, 조선의 이황(李滉)과 율곡 이이(李珥)는 이를 심성론과 국가 경륜의 지혜로 확장했다. 대산 역시 그 거대한 흐름을 이어받아 시대에 맞는 고전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강의는 독특했다. 말로 이치를 풀고, 그림으로 형상을 보이며, 숫자로 구조를 분석한 뒤 다시 종합했다. 스스로 “주역을 유행가로 만들고 싶었다”고 할 만큼 대중의 눈높이를 고민했다. 1985년 이후 전국을 돌며 이어간 강의에 20여 년간 7000여 명이 참여했다. 새벽차를 타고 모여든 이들로 강당은 늘 가득 찼다. 그는 강단의 학자라기보다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승이었다.
추모식에서는 추모집 ‘영원한 우리의 스승, 대산’을 봉정할 예정이다. 제자 81명이 참여해 ‘나의 스승, 나의 멘토’를 주제로 쓴 단문과 수필, 시, 연구 논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실렸다. 선생께 호를 받은 소산 김주한 전 대법관 등 2677명의 이름도 함께 정리해 인연의 기록으로 남겼다. 미발표 논문 ‘효(孝)란 무엇인가’와 제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당부, 언론에 비친 삶과 사상까지 더해져 대산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덕분에 ‘구름 위의 학문’을 삶의 언어로 끌어내린 강학의 현장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동안 국내 언론은 대산을 “주역 연구의 대가이자, 동양 정신문화의 맥을 현대 사회에 전한 전승자”로 기록해 왔다.
추모집에 실린 제자들의 회고는 그 가르침의 깊이를 전한다. 김주한 전 대법관은 “대산 선생은 주역의 이치를 꿰뚫어 쉽게 풀어 전함으로써 사회 일반이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한 분”이라 평했다. 역시 대산에게 호를 받은 경산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은 “주역을 삶의 지혜로 깨닫게 해준 강의”였다고 적었고, 백산 이찬구 한국홍역학회장은 주역의 박괘(剝卦)를 ‘박혁대성(剝革大成·남이 아닌 스스로를 깎고 고쳐 크게 이룸)’이라 풀이한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대산의 가르침을 회고하면 그가 꿈꾼 대한민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도자는 먼저 ‘수출서물(首出庶物)’의 용기로 앞장서야 하지만, 일단 자리에 오르면 ‘무수길(无首吉)’의 겸손으로 자신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또 포황(包荒)·용빙하(用馮河)·불하유(不遐遺)·붕망(朋亡)을 지도자의 덕목으로 들었다. 생각이 다른 이도 포용하고, 어려운 일에 용감히 나서며, 소외된 사람까지 살피고, 편가르기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깊은 진영 갈등 속에 놓인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매서운 죽비 소리와 같다.
그는 지도자의 최고 경지를 ‘신(神)’이라 했지만,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행신(行神)은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고, 묘신(妙神)은 사람마다 때와 환경이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이며, 진신(盡神)은 백성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리더십이다. 지도자의 역할은 통제자가 아니라 국민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촉진자라는 뜻이다.
대산은 늘 국민과 국가의 기운이 밝아지기를 바랐던 시대의 사표였다. 그러나 그 밝음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바꾸지 않는 나라에게 미래는 없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낡은 계획과 습관을 과감히 바꾸지 않으면 결코 풍요의 정괘(鼎卦)에 이를 수 없다는 ‘치둔입정(治屯立鼎)’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저출생과 양극화,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제 정세의 파고 앞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의 둔화, 안보의 긴장, 가치의 분열 속에서 자기 개혁을 시험받고 있다. 대산이 꿈꾼 것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를 고쳐 마침내 큰 뜻을 이루는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