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남정훈 기자] 한국 야구 대표팀의 17년 묵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첫 경기 징크스를 깨뜨린 건 ‘문보물’ 문보경(LG)의 만루포 한 방이었다. 2000년생 동갑내기 노시환이 지난 2월 KBO리그 역대 최장 기간, 최대 규모인 11년 총액 307억원의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됐는데, 지금의 기세라면 문보경도 노시환 못지 않은 계약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보경은 지난 5일 일본 도쿄도 분쿄구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본선 1라운드 C조 조별리그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5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해 1회 선제 결승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한국은 1회 선두타자 김도영의 볼넷과 이정후의 우전 안타, 안현민의 볼넷으로 1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외야 플라이 하나면 선취점을 뽑으며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는 상황. 문보경은 외야로 플라이를 쳤는데, 그걸 아주 멀리 담장을 넘겨버렸다. 최상의 결과였다. 체코 선발 다니엘 파디사크의 슬라이더가 실투로 들어오자 문보경은 잡아당겼고, 문보경의 방망이를 떠난 공은 시속 110.7마일(약 178.2㎞)로 428피트(130.5m)를 날아가 도쿄돔 담장을 넘어갔다. 문보경의 타격음이 들리는 순간 2루에 있던 이정후는 홈런을 직감하고 만세를 불렀다.
문보경은 3루를 돌 때 대표팀 선수끼리 약속한 ‘비행기 세리머니’를 한 번, 홈을 밟기 직전 또 한 번 선보였다. 노시환이 이번 WBC를 앞두고 만든 이 세리머니는 비행기를 타고 결선 라운드부터 결승이 열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까지 날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보경은 마이애미를 상징하는 듯한 ‘M’ 자풍선을 동료로부터 전달받고 기뻐했다.
문보경의 해결사 본능은 경기 막바지에도 계속됐다. 7회 8-3으로 앞선 상황에서 중전 적시타로 팀 동료인 박해민(LG)을 불러들였다. 지난 시즌 108타점으로 KBO리그 타점 부문 2위에 올랐던 문보경다운 득점권 타격이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문보경은 “첫 타석이라 긴장했다. 무척 중요한 기회가 와서 어떻게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가능하면 외야플라이를 쳐서 팀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만루 홈런순간을 떠올렸다.
베이스를 돌면서 두 번이나 비행기 세리머니를 펼친 것에 대해서는 “홈런 치고 돌면서 세리머니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활짝 웃었다.
이제 한국은 7일 ‘숙적’ 일본과 한 판 승부를 벌인다. 2023 WBC 우승을 차지하며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이번 WBC에 출전한 일본은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다수의 메이저리거로 이번 대표팀을 꾸렸다. 일본 대표팀의 별칭인 ‘사무라이 재팬’은 이번 C조에서 단연 최강팀이다. 쉽지 않은 승부지만, 일본을 잡아낸다면 한국은 조기에 마이애미행 티켓을 예약해도 된다.
물론 쉽지 않다. 한국은 한국은 2015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11경기에서 10패 1무로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다. 무승부 한 번도 지난해 11월 열린 K-베이스볼 시리즈에서 9회 2사에서 나온 김주원의 동점 솔로포로 만든 결과였다. 그전엔 10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문보경은 “일본은 세계적인 선수가 많은 팀이다. 존경하는 선수도 있고, 꼭 이기고 싶은 상대이기도 하다”며 “우리가 연패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좋은 모습 보여줘서 이기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