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을 자제하면서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인한 중동 정세 격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보호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는 대신 중국이 새로운 '다극화 세계질서'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데 역점을 뒀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8일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미중) 양국이 교류하지 않으면 오해와 오판을 초래할 뿐이고, 충돌과 대결로 나아가 세계에 화를 미칠 것"이라며 "중국과 미국은 모두 대국으로, 서로를 바꿀 수는 없으나 우리는 공존의 방식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리창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전쟁을 시작한 작년 양회 정부업무보고에서 "모든 형식의 일방주의·보호주의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넣으며 대립각을 세웠으나, 올해는 미국을 연상시키는 비판 표현의 비중을 줄였다.
이런 가운데 왕 주임은 이날 올해 '고위급 교류 일정'을 위해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비판'을 줄이는 대신 '다극화 추진' 입장은 한층 적극적으로 제시됐다.
왕 주임은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등이 글로벌 도전에 함께 책임을 지고 대응하자며 제시한 '미중 공동통치(co-governance)' 프레임을 받아들이는가"라는 미국 매체의 질문에 "중국과 미국은 당연히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만, 우리는 이 행성에 190여개 국가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며 "다원·공생이야말로 인류 사회 본연의 모습이고, 다극·공존이야말로 국제 구도의 마땅한 모습"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중국은 절대 강대국이 되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하는 옛길을 가지 않고, '강대국 공동통치' 논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최근 미국 일극체제를 넘어서자며 내세우고 있는 구호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 다극화'에 관해서는 다극화한 구조 속에서 모든 국가가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갖고, 유엔(UN) 헌장과 국제관계 기본준칙을 준수하는 것이라며 의미를 한층 구체화했다.
왕 주임은 지난해 말 '2025년 국제 형세와 중국 외교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올해는 국제 구도 변화 방향의 중대한 분수령이었고, 단극 패권이 인심을 얻지 못하는 동안 다극 세계가 눈앞에 다가왔다"며 미국을 더는 세계 질서의 중심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는데, 이날 언급도 마찬가지 취지로 풀이된다.
한편, 중국이 지난해 4월 '주변외교 공작회의' 이후 아시아 각국을 포함한 '주변외교' 비중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왕 주임은 "중국이 몇몇 전통적 강대국들처럼 주변에 세력 범위를 긋고 진영 대결을 도발하거나 심지어 이웃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아시아의 형세가 오늘처럼 안정적이었겠는가"라며 중국이 지역 안보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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