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9일부터 총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에 나선다.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최근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대전환기와 맞물린 ‘K반도체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시행(10일)을 앞두고 긴장감이 역력한 재계도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향배를 예의 주시하는 기류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향후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들을 사실상 ‘해고 1순위’로 분류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9∼18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 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공투본에 소속된 노조는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동행 등으로 전체 합산 조합원 수는 약 8만9000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직원(12만5000여명)의 약 70%에 달하는 규모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지난 5일 유튜브 방송에서 과반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할 경우 “총파업 동안 모든 집행부는 평택사무실을 점거해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만약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자가 있다면 명단을 관리해 추후 (사측이) 조합과의 협의가 필요한 강제 전배(전환배치)나 해고에 이들을 우선적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업 불참 직원들을 강제 전배·해고의 1순위로 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조는 파업 기간 신고센터를 운영해 회사에 협조적인 직원들을 신고할 경우 포상을 주는 제도까지 운영하겠다며 조합원들이 파업에 찬성하고 동참하도록 으름장을 놨다.
이 때문에 내부에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자 지나친 파업 강제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근무 중인 한 노조원은 “노조의 파업 결정 이후에도 직원들이 사정에 따라 업무를 보는 것은 자유로운 것 아니냐”며 “해고 압박에 오히려 반감을 가진 노조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 임직원 중 5만명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소속이어서 파업 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주요 제품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단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K반도체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배경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비해 빠른 속도로 HBM4(6세대 HBM)를 양산 출하하며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기존 HBM3E(5세대 HBM) 경쟁에서의 아쉬움을 씻고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 인력이 파업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는 물론 하청업체 등 연관 산업에도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은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상한선 폐지다. 영업이익은 물론 경제적부가가치(EVA)를 반영해 OPI를 결정하는데, 노조는 EVA 기준이 모호해 적절한 성과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OPI 상한선 폐지를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OPI 초과 달성이 어려운 사업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며 임금 6.2% 인상과 함께 자사주 20주씩 지급, 1%대 저리로 주택 자금 최대 5억원까지 대출 등 여러 보상안을 제시했다. 특히 DS부문 메모리 사업 쪽은 영업이익 100조원 달성 시 OPI 100%를 특별포상하기로 했다. 사측 입장에선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은 셈이지만 노조가 일축하면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노조가 파업에 나선다 해도 이미 사측이 특별포상안을 비롯해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제시한 만큼 타결을 원하는 노조원의 참석률이 저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24년 총파업 당시 조합원 2만8000명 중 실제 파업 참여 인원은 6500명에 불과했다.
재계도 삼성전자 노조의 찬반투표를 주시하고 있다. 파업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대규모 파업 사례인 데다 노조의 불법 쟁의 행위에 따른 손해가 발생해도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만큼 파업 강도가 대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계는 원청 기업과 단체교섭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된 범위 외의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거나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