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남정훈 기자] 2023년까지 LG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시속 150km 중반대의 강속구를 앞세워 통산 139세이브를 거둔 고우석(28)은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최고 리그의 벽은 높았다. 각종 부상과 부진, 트레이드 등으로 점철된 2년을 보내며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밟아보지도 못했다. 마이너리그도 만만치 않았다. 2024년엔 더블A, 트리플A 통틀어 44경기 4승 3패 4세이브 3홀드 평균 자책점 6.54에 그쳤다. 2025년엔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각 단계를 오갔고, 32경기 2승1패 3홀드 3세이브 평균자책점 4.46에 그쳤다.
LG로 다시 유턴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고우석은 보장된 꽃길을 마다하고 2026년에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MLB 도전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고우석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발탁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고우석은 다름 아닌 투구로 2026 WBC에서 자신의 지난 2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고우석은 지난 7일 일본전에서 WBC 첫 등판에 나섰다. 5-5로 맞선 6회 마운드에 오른 고우석은 4번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 5번 오카모토 카즈마(토론토 블루제이스), 6번 무라카미 무네타카(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모두 범타로 막아냈다. 요시다는 MLB 3년차, 오카모토와 무라카미는 지난겨울 각각 4년 6000만달러, 2년 3400만달러에 MLB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이다. 현역 메이저리거들을 자신의 공으로 제압해낸 것이다.
지난 8일 대만전에선 고우석의 비중이 더 올라갔다. 4-4로 맞선 9회 마운드에 올랐다. LG 마무리 출신답게 9회를 최고 구속도 151km의 직구를 앞세워 탈삼진 1개를 섞어 삼자범퇴로 끝냈다. 무사 2루로 시작되는 연장 10회 승부치기에서도 고우석은 마운드에 올랐다. 코칭스태프의 고우석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상대의 희생번트 시도를 1루수 셰이 위트컴이 1루가 아닌 3루에 던져 주자를 모두 살려주는 오판이 나왔지만, 고우석은 꿋꿋했다. 후속 장쿤위에게 스퀴즈 번트를 내줘 결승점을 내주긴 했지만, 정쭝저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국이 4-5로 패해 고우석은 패전투수가 됐지만, 누구도 고우석을 탓할 수 없었다. 이날 실점도 승부치기로 출루한 주자였기에 자책점도 아니었다.
고우석은 이번 WBC에서 2.2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평규자책점 0을 기록했다. 지난 2년 동안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팬들의 머릿 속에서 사라졌지만, 고우석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은 던져왔고 이번 WBC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고우석이 과연 WBC를 발판삼아 그토록 바라던 MLB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