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전쟁의 상흔과 앙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포클랜드 제도(諸島)는 아르헨티나와 가까운 남대서양에 있는 섬들이다. 포클랜드는 현재 이 섬들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국이 붙인 이름이고, 아르헨티나에선 ‘말비나스’라고 부른다. 1982년 4월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권은 포클랜드에 군대를 보내 얼마 안 되는 영국군 수비대를 무너뜨리고 섬을 점령했다. 이에 화가 난 영국 정부가 대규모 함대를 파병하면서 두 나라 간에 포클랜드 전쟁이 터졌다. 74일간 이어진 전투 끝에 영국군이 섬에서 아르헨티나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포클랜드 영유권을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49명이 각각 전사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형상화한 이미지. 포클랜드 제도 지도(노란색)를 중심으로 왼쪽은 전쟁 당시 레오폴도 갈티에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오른쪽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다. 갈티에리는 패전 직후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SNS 캡처

전쟁에 패배했으나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영국의 포클랜드 지배를 부정하고 있다. 전후 40년이 지난 2022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여동생인 앤 공주가 포클랜드를 방문했다. 그는 전쟁 당시 영국군의 진격로 등 전적지를 답사하고 영국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에 헌화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격분한 것은 물론이다. 현직 장관이 직접 나서 영국 정부와 왕실을 향해 “영국인이 사전 예고도 없이 아르헨티나 땅을 밟다니 무례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영국은 유엔 결의에 어긋나는 식민지를 남대서양에 존치시킴으로써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2020년 사망)의 행보를 보면 영국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적개심을 체감할 수 있다. 포클랜드 전쟁 후 4년이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맞붙었다. 마라도나가 핸들링 반칙으로 넣은 골이 득점으로 인정되며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저 유명한 ‘신(神)의 손’ 사건이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마라도나를 비난하기는커녕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이듬해인 1987년 당시 영국 왕세자이던 찰스 3세로부터 왕실 차담회 참석 초청을 받은 마라도나는 차갑게 거절했다. 그가 밝힌 이유에 아르헨티나인들은 또 열광했다. “내 동포들을 죽인 사람들과 차를 마실 수 없다.”

 

지난 5일 소속 팀인 MLS 인터 마이애미 선수 및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리오넬 메시(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념품을 건네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라도나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출신인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8)가 지난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여자 초등학생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직후인 만큼 부적절한 처신이란 지적이 제기된 탓이다. 메시 측은 그가 속한 인터 마이애미가 2025년 미국프로축그리그(MLS)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파문은 쉬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맹주이자 수호자를 자처해 왔으나, 정작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은 남미의 아르헨티나 대신 유럽의 영국을 적극 지지했다. 44년이 지났는데도 전쟁이 아르헨티나에 남긴 상흔과 앙금은 여전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