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철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산업 현장의 위험이 과거보다 훨씬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존 산업재해 대응 방식만으로는 새롭게 등장하는 위험을 따라가기 어렵다”며 제도와 조직의 대응 체계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5일 밝혔다. 지난해 노동부의 산업안전본부장 직책을 차관급으로 격상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재명정부는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차관급으로 승격했다. 지난해 11월 초대 본부장으로 임명된 그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한국 산업안전 정책의 키를 쥐게 됐다. 류 본부장은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자리로 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뛰어온 그가 최근 느끼는 효능감은 남다르다.
정부가 지난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관련 법안들이 최근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그 결과 6월부터는 재해조사보고서가 공개되고, 8월부터는 안전보건 공시제가 시행된다. 연간 3명 이상의 산업재해 사망이 발생한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작업중지권 확대 법안도 지난달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류 본부장은 “작업중지권을 20년 동안 주장했고, 재해보고서 공개도 줄기차게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너무 잘 안다”고 강조했다.
정책이 속도감 있게 변화하면서 떠안게 된 부담도 작지 않다. 한 시간 반가량 인터뷰 동안 ‘고민’이란 단어를 18번이나 쓴 그는 “산재 관련 체감하는 변화를 국민께 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류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연 3명 사망 시 영업이익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이 본회의 통과를 앞뒀다. 예상 효과나 산업계 반발 우려는 없나.
“우려할 정도가 돼야 하지 않겠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고사망 경우에도 법인이나 개인이 받는 처벌이 평균 벌금 500만~1000만원 수준이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산재 예방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담하는 비용이 훨씬 낮았다. 그러면 예방 활동이 작동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모든 중소형 사업장들까지 범죄자로 만드느냐’는 얘기에는 반박하고 싶다. 연 사망이 3명이어야 과징금이 영업이익의 5%인데 5%가 굉장히 커 보이지만, 감경 사유 등 합리적 부과 기준을 하위 법령 통해 만들려고 한다. 과징금 제도 목적은 사회적으로 ‘이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는 데 있다. 정부로서는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기업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나.
“당연히 효과가 있었다. 다만 아직 구체적으로 평가하기엔 이르긴 하다. 어떤 법의 효과는 실제 처벌 사례가 축적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다. 산재 사망자 수는 단기적으로 등락이 있을 수 있어 장기적인 추세를 봐야 한다. 특히 산재보험 가입자가 늘고 노무제공자 등 적용 대상도 확대되고 있어 단순 수치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분위기 측면에서는 이미 일정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의 안전보건 투자 확대나 관련 인력 채용 증가, 최고경영자(CEO)의 관심 증가 같은 변화가 나타난 것 자체가 하나의 효과 아니겠나.”
―피지컬 AI 도입 등 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정책도 변화해야 하지 않나.
“사람이 로봇과 함께 일하느냐, 분리돼 일하느냐에 따라 위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지금 논의되는 피지컬 AI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안전보건 문제의 양상들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피지컬 AI라고 부를 것인가’ 같은 기본적인 정의다. 아직 개념 자체도 사회적으로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런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그에 맞는 입법이나 제도 정비도 가능하다. 우리 산안법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포괄적 규제 체계를 갖춘 나라들은 기술이 들어오면 사업자가 위험 관리 방법을 찾도록 하는 구조인데,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예측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태스크포스(TF) 등을 구성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관련 조직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인가.
“고민하고 있다. 현재 조직 체계는 산업별로 나뉘어 있어서 새로운 기술 위험을 전담하는 부서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일례로 지난해 ‘노무제공자안전보호과’가 생기지 않았나.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노무제공자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해져 별도 담당 조직이 만들어진 것처럼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제 개편도) 앞으로 대응해야 할 과제로 보고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다.”
―정부 조직에 들어와 일하면서 놀란 부분이 있다면.
“노동부 공무원들이 일을 정말 많이 한다는 점이다. 노동 감수성이 높아져야 할 분들이 오히려 노동 감수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웃음).
알다시피 산재 관련 대통령 관심이 많다. 첫 국무회의에서도 산재 문제가 언급됐고,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대통령까지 직보하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장관의 열정 등까지 더해져 공무원들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런 대응이 개인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앞으로는 시스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사업장 산재를 줄이는 게 과제인데, 해법이 있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안전보건 격차, 즉 ‘위험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정책 목표다. 쉽진 않다. 격차가 발생한 배경이 오랫동안 우리 산업이 위험을 감수하는 식으로 성장하도록 장려하거나 방치됐기 때문이다.
방법은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흔히 ‘당근과 채찍’이라고 하는데, 저는 ‘맛있는 당근과 단호한 채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맛없는 당근과 안 아픈 채찍은 잘 안 통한다. 자원과 지불 능력이 있는 기업에는 강한 규제로 안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반면 소규모 사업장은 의지가 있어도 관리 인력이 없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업장에는 정책이 직접 닿도록 전달 경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원청 기업이나 협동조합, 중간지원 조직, 지자체 행정망 등 다양한 ‘길목’을 매개로 지원이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와 올해, 산업안전분야 1200명을 포함해 총 2000명의 근로감독관 증원이 이루어진다. 실효성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산재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제조업과 건설업 비중이 높다.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7.6%에 달하는데 OECD 평균은 15.8%다. 1만명당 산재 사망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만인율)이 0.39?(퍼밀리아드)로 일본(0.12?), 독일(0.11?), 미국(0.35?), 영국(0.03?)과 비교해 높은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감독관 수도 단순 OECD 평균과 비교하기 어렵다.
숙련된 감독관 양성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규 산업안전감독관이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교육(8주) 외에도 베테랑 감독관에게 신규 감독관 교육을 전담토록 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감독관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교육기관 등 인프라도 강화할 계획이다.
데이터 기반 행정도 강화하려 한다. AI, 드론 등을 감독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소규모 공사 현장은 산재 발생 사실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드론 등을 활용하면 감독 행정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산재 감축 장기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해 단기 목표로 제시해 줄 수는 없나.
“쉽지 않은 문제다. 과거에 단순히 산재 신청을 줄이는 방식으로 지표 관리를 했을 때 산재 신청을 잘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관리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단기 목표보다 장기 추세를 보는 게 중요한 이유다. 다만 정책 효과를 조기에 확인할 수 있는 선행 지표나 다양한 안전보건 지표를 만드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