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피와 살이 되는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올 초 가족과 함께한 해외여행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앞둔 바로 전날, 초등학생 아이에게 열이 나기 시작했다. 동네 내과에서 독감 검사를 했으나 음성이 나와 종류별로 해열제를 챙긴 뒤 한참 전에 짜둔 여행을 감행했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아이 상태가 비교적 괜찮았지만 상공에서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기내에서 투여한 해열제 덕에 열은 좀 내렸지만 아이는 “호텔에서 쉬어야겠다”며 기력이 확 꺾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여행 첫날 후쿠오카 커넬시티 옆 호텔 침대에서 아이는 좀체 일어나질 못했다. 외식은커녕 일본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와 따뜻한 물에 풀어먹이며 전전긍긍하는 밤을 보냈다.
이현미 산업부 기자
해열제가 통하길 간절히 바라며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아이의 열이 40도가 넘었다. 얼굴이 불덩이가 된 아이의 모습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도착 시 외교부로부터 받은 24시간 영사콜센터에 국제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니, 후쿠오카 내 병원 목록을 문자로 보내주고선 현장에서 통역이 필요하면 다시 센터로 전화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외국인이 현지 병원 목록만 보고선 도대체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일요일에 병원이 문을 여는지 아닌지, 일본어도 못하는데 그걸 어떻게 확인할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가도 접수, 대기, 의사 면담, 수납 등 모든 과정에 통역이 필요할 텐데 그때마다 국제전화로 상담사를 거쳐 통역과 연결해야 할까 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센터에 전화를 걸 때마다 상담사가 바뀌었다. 영사관 서비스로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일본에서 119 구급차 탔다’는 사례를 접하고선, 호텔 안내데스크에서 ‘119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을 파악한 호텔 직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인근 응급의료센터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소아과 전문의가 진료를 보고 있는 병원을 찾은 뒤 택시를 불러줬고, 병원 측에도 미리 상황을 전달해줬다. 눈물 나게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니 일본어로 뭐라뭐라 묻는 직원에게 “아임 코리안(한국인입니다)”이라고 하니 곧바로 “리상 데스까?”라며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러고선 통역 앱이 깔린 태블릿을 갖고 나와 안내를 했는데 해당 앱의 기능이 매끄럽지 않게 작동했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에 저장된 ‘파파고’ 앱을 켜고 한국어?일본어 대화 설정을 한 뒤로는 일사천리로 의료 서비스가 진행됐다. 일본인 의료진은 외국인과 앱을 통해 소통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우리 가족은 절하고 싶을 만큼 파파고의 뛰어난 성능에 감탄했다. 의료라는 고도의 전문 영역과 건강?생명이 달린 중요한 의사소통이 인공지능(AI) 통역 앱으로 전혀 무리없이 진행됐다. 일본 의료진의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일본인 소아과 의사는 파파고에 말하는 걸 재미있어 하며 얼마든지 더 물어보라 했다. “폐렴일 가능성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 B형 독감이라서 타미플루 복용 후 쉬면 된다”고 친절하게 답했다. 의료 비용과 직결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거나 수액을 맞히라는 권유는 하지 않았다. 해외 의료 이용 시 기본 100만원 안팎의 비용을 감당했다는 사례가 수두룩한데, 우리에게 청구된 금액은 14만원이었다. 여러모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후쿠오카 응급의료센터를 나섰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1분 컷’ 진료를 보거나 각종 비급여를 권장하는 한국 의료진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문득 우리나라 병원들은 외국인 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