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발달과 함께 챗GPT 등 생성형 모델이 확산하면서 AI 연산·추론에 쓰이는 반도체 칩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미·중 빅테크(거대기술기업)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해졌고, AI 연산 성능을 높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 다툼도 확대됐다. 한국은 HBM 등 하드웨어 시장에선 우위를 보이지만 범용 AI 모델 기술력은 선도국과 격차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AI 경쟁은 모델만이 아니라 반도체·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포함한 하드웨어 생태계 경쟁으로 확대됐다. 이 시장 최강자는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H100과 H200,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로 AI 데이터센터 GPU 시장 9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이에 맞서 다른 빅테크도 자체 AI 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텐서처리장치(TPU)를 선보이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자체 AI 칩을 출시했다. 중국도 화웨이를 필두로 AI 칩 주권 확보에 주력하는 중이다.
한국은 HBM 등 하드웨어 시장에선 우위를 보이지만 범용 AI 모델 기술력은 선도국과 격차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I 연산에 쓰이는 데이터를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경쟁도 치열하다. 대형 AI 연산에는 HBM이 필수인데, 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메모리 HBM3E까지 HBM 시장을 주름잡았고, 삼성전자는 6세대 HBM4 양산에서 한 발 앞서며 시장 격변을 예고했다.
한국은 메모리 등 하드웨어 경쟁력은 높지만 대규모언어모델(LLM) 등 AI 산업 생태계 대부분 영역에서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격차가 크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이 주목할 만한 AI 모델(2024년 기준) 15개를 보유한 데 반해 한국이 가진 모델은 1개에 그쳤다.
중국이 높은 AI 경쟁력을 갖춘 데엔 신속하고 막대한 투자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2016년 알파고 충격 이듬해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내고 AI 핵심 산업과 생태계 확대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했다. 지난해에는 2030년까지 AI 관련 산업을 10조위안(약 210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AI 역량을 빠르게 국가 과제로 삼고 투자한 중국은 이후 효율성을 대폭 높인 AI 모델 ‘딥시크’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 정부는 올해 GPU 확보와 AI 사업에 9조9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생태계 구축에 팔을 걷어붙였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 혁신을 돕는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연구소장은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 공유가 활성화돼 있어 AI 학습 속도가 높다”며 “한국도 규제 샌드박스 등 데이터 확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