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 재정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향후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선제적으로 편성해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손실 보전 등에 재원이 필요하다면서 추경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대규모 추경은 재정 건전성 악화 등 각종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어 유류세 인하 등 정책 수단을 최대한 활용한 뒤 경기 상황에 맞춰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9일 경제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물가를 자극해 금리 인상 압력을 높이는 한편 수출·증시 불안을 확대해 고환율을 부르는 등 ‘3高’(고물가·고환율·고금리)를 가중시킬 수 있다. 당장 이날 서울 휘발유와 경유 가격(12시 기준)이 ℓ당 각각 1949.0원, 1971.4원으로 2000원에 육박하는 등 고유가발 물가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환율도 심상치 않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중동 사태가 6주 이상 지속돼 올해 연평균 유가가 85∼100달러선까지 오를 경우 환율도 1480∼1530원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매점매석 단속 등 행정 절차만으로 경기 침체 우려를 덜기 쉽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 재정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경기 충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경기침체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편성할 수 있다. 원유 수입 물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향후 경기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추경 요건은 충족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세수 여건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적자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초과세수 등을 활용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 결과 브리핑을 갖고 “유가 최고가격제를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며, 당장은 아니지만 거기에 필요한 재원이 많이 생겼다”면서 “(추경 관련) 진지한 논의들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