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불안정한 중동 정세 여파가 또다시 국내 증시를 덮쳤다. 모든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3거래일 만에 코스피 시장에서 다시 발동됐고, 시가총액 상위 종목 주가가 일제히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수 상승에 베팅하며 규모를 키웠던 ‘빚투’(빚내서 투자)의 강제 청산이 일부 현실화하면서 하락장을 부채질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장보다 333.00포인트(5.96%) 내린 5251.87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5.72% 하락 출발해 낙폭을 키우다 오전 9시6분엔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10시31분엔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서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올해 두 번째이자 역대 최대 하락률을 기록한 4일 이후 3거래일 만에 나온 거래 중단 조치였다. 지수는 장중 5096.16(-8.75%)까지 밀렸다가 장 후반 하락을 일부 만회했다.
수급별로 보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약 3조1800억원, 1조5300억원을 팔아치우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개인 투자자가 홀로 4조6300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 하단을 지탱했다.
◆미수거래 청산 규모 확대
종목별로는 삼성전자(-7.81%)와 SK하이닉스(-9.52%), 현대차(-8.32%) 등 상위 종목의 하락폭이 컸다. 코스닥도 이날 전 거래일 대비 52.39포인트(4.54%) 내린 1102.28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선물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 오전 10시31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란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빚투가 국내 증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시 급락으로 반대매매가 연이어 발생하면 강제 청산 물량이 쏟아지며 낙폭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추가 반대매매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초단기 빚투’라 불리는 미수거래에서는 이미 강제 청산 규모가 확대하고 있다. 미수거래는 투자자가 증권사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2거래일 안에 돈을 갚는 방식인데, 투자자가 미수금을 갚지 못하면 주식을 강제로 파는 반대매매가 진행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은 2조983억원으로, 이란 전쟁 직전(2월27일·1조526억원)의 약 2배에 이른다. 여기에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금액은 824억원을 기록해 2023년 10월 이후 최대를 나타냈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의 비율(3.8%)로 봐도 지난해 평균(0.76%)보다 5배 높았다. 직전일인 5일에는 이 비율이 6.5%까지 오르기도 했다. 손실을 본 레버리지 투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미수거래가 연쇄 청산하면 중기 차입거래인 신용거래융자까지 흔들릴 수 있다. 6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융자는 32조7899억원으로 전날의 역대치(33조6945억원)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매매 시차 두고 돌아올 수도”
빚투의 강제 청산이 현실화하면서 금융당국도 관련 리스크 점검에 돌입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긴급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금융·산업별 위험 요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손실이 크게 확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용융자와 한도대출 등 자금 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상 최대 수준까지 상승한 신용잔고는 시차를 두고 반대매매로 돌아올 수 있으며 이는 분명한 부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의 방향성을 시장의 최대 변수로 꼽았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과거 유가가 두 배 오르면 전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압력 이후 침체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면서 “이란 전쟁이 확전 조짐을 보이는 만큼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한국 증시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흐름, 국제유가 방향성, 미국 물가·경기 지표 등 굵직한 이벤트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면서 이번 주 코스피 예상 범위를 5150∼5800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