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알파고 쇼크’, 이후 10년의 변화…“인간과 AI, 적에서 공진화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3월. 인간의 지능과 기술의 미래를 뒤흔든 역사적 장면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 정상급 프로기사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다섯 차례 대국을 진행한 것. 결과는 4승1패. AI의 승리였다.

 

이 대국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기술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직관과 창의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인간 지능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던 영역마저 AI가 넘어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주최한 ‘에이전틱 AI 상용화 글로벌 캠페인’에 참석해 에이전틱 AI로 제작한 바둑 모델과 대국을 진행한 뒤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핸스 제공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적 대국이 열렸던 장소에서 다시 한 번 이 9단이 무대에 섰다.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에이전틱 AI 상용화 글로벌 캠페인’ 행사. 이곳은 10년 전 ‘알파고 대국’이 펼쳐졌던 장소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다시 선 이세돌 9단의 메시지는 달라져 있었다. 대결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협력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

 

“이제 AI는 승부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 정의돼야 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덧붙였다. “10년 전 우리는 AI와 대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AI와 협업해 함께 나아가는 시대입니다.”

 

이 9단은 은퇴 이후 AI와 바둑을 둔 경험을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맞바둑은 아예 안 됩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자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두 점을 먼저 두고 시작했는데도 졌습니다. AI에 20초 제한시간을 두고 저는 무제한 시간을 두고 대국했습니다. 그래야 겨우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한때 세계 정상급 프로기사였던 그조차 AI와의 격차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주최한 ‘에이전틱 AI 상용화 글로벌 캠페인’에 참석해 에이전틱 AI로 제작한 바둑 모델과 대국을 진행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인핸스 제공

전문가들은 ‘알파고 대국’을 인간의 패배가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해석한다.

 

김현철 한국인공지능협회장은 “알파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졌다’고 기억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이 인간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고 본다”며 “바둑은 AI 충격을 가장 먼저 받은 분야였지만, 그래서 가장 먼저 적응했고 가장 먼저 공존의 문법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9단은 모든 분야에서 알파고 모멘트를 접할 것이라 했다”면서 “이 점에서 바둑계는 앞으로 교육·의료·연구·행정 등 다른 영역이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먼저 보여준 선행 사례”라고 짚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AI를 거부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AI를 통해 인간의 판단력과 실행력을 얼마나 증강할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바둑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증명한 분야입니다.”

 

김 협회장은 “알파고 이후 지난 10년은 바둑의 위기 10년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협력 모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10년이었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서강대학교 가상융합전문대학원 교수는 바둑계의 지난 10년이 현재의 생성형 AI 시대와 매우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충격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활용 단계로 넘어갔다”며 기술 수용 과정의 전형적인 흐름을 짚었다. 이어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단순한 공포보다 중요한 질문은 AI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라며 “바둑계는 이 질문을 가장 먼저 실험했고 비교적 성공적인 답을 보여준 분야”라고 평가했다. 또 “AI와 경쟁하려 하기보다 AI를 도구로 활용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할 때 기술은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면서 “바둑이 바로 그 사실을 먼저 보여준 사례”라고 덧붙였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핸스가 주최한 ‘에이전틱 AI 상용화 글로벌 캠페인’에 참석해 에이전틱 AI로 제작한 바둑 모델과 대국을 진행하고 있다. 인핸스 제공

‘알파고 대국’은 일반 대중에게 AI 시대의 도래를 각인시킨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바둑의 사고 방식 자체도 바꿔놓았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바둑의 ‘기보 문화’에 주목했다. 최 교수는 “바둑에서 기보는 축적된 경험의 기록”이라며 “이를 데이터로 전환해 학습하는 AI는 기존 기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수까지 스스로 탐색하고, 이를 매우 빠른 속도로 계산해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바둑의 사고 방식이 전통적으로 기보와 경험에 의존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이러한 변화는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간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바둑계의 지난 10년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봤다.

 

“과거에는 기보 연구나 상급자와의 대국 경험이 실력 향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AI와의 대국을 통해 사실상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이 바둑에서 사고하고 탐구할 수 있는 지평 역시 크게 확장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다른 분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끝으로 “AI와 경쟁하기보다 공존 속에서 함께 발전하는 ‘공진화’. 그것이 오늘날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