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수수밭에서 MLB까지…‘거인’이 된 어느 섬나라 야구의 절실함

카리브해의 휴양지 도미니카…MLB의 거인으로
아이들에게 ‘가난’ 굴레 벗어던질 기회로 여겨져

카리브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작은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휴양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야구라는 광활한 캔버스 위에서 이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거인’으로 통한다. 지난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전 로스터를 기준으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선수는 무려 100명이나 됐다.

 

미국 외 국가 중 단연 독보적인 수치로 같은 시즌 기준 베네수엘라(63명), 쿠바(26명), 푸에르토리코(16명), 캐나다(13명) 등보다도 훨씬 많다.

 

우리나라나 일본이 한 자릿수 혹은 10여명의 선수를 명단에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의 위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 디폿 파크에서 열린 도미니카 공화국과 이스라엘의 ‘202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경기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가 야구공을 집어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작고 낯선 나라가 전 세계 야구 인재들의 화수분이 된 배경에는 역사적 우연과 특히 ‘절실함’이라는 생존 본능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쿠바 내전을 피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주한 사탕수수 농장주들이 야구를 처음 전파했고, 20세기초 미군의 주둔을 거치며 야구 인프라는 비약적인 확장의 계기를 맞이했다.

 

사탕수수밭에서 고된 노동을 마친 이들이 야구공을 던지며 고단함을 달랬던 문화는 야구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국가적 스포츠로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기틀이 됐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들에게 야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운명을 바꿀 유일한 통로로 여겨진다.

 

2023년 기준 빈곤율이 24%에 육박하는 척박한 현실에서 야구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절호의 기회여서다.

 

이러한 열망을 포착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도미니카 공화국 현지에 직접 현대식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원석들은 체계적인 훈련과 세심한 영양 관리를 거쳐 미국 무대로 진출하는 탄탄한 다리를 건너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유망주 중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그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이 누리는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미니카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요리용 바나나에서 유래한 ‘플라타노 파워(Plátano Power)’라는 말은 이들의 강인한 체력과 야구 실력을 상징하는 대명사다.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도미니카 출신 스타들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 메츠의 후안 소토를 비롯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등은 저마다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작은 섬나라에서 건너온 이들은 이제 가장 화려한 조명 아래서 ‘야구의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다.

 

이들에게 야구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이며,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핵심 연료가 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 디폿 파크에서 열린 도미니카 공화국과 이스라엘의 ‘202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경기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들이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6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호주전 승리로 8강에 진출한 우리나라는 오는 14일(현지시간) D조 1위와 4강을 놓고 격돌한다.

 

현재 D조는 도미니카 공화국(3승)과 베네수엘라(2승)가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상태에서 오는 11일 양 팀의 맞대결로 조 1위가 결정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8강전 상대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만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