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무용론 속 새 총장 선거전 ‘후끈’… “이번엔 여성을!”

총회 의장 “이젠 여성 유엔 수장 나와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등 ‘도전장’ 내

미국과 이란 간 중동 전쟁의 와중에 유엔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며 국제사회에서 ‘유엔 무용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치인과 외교관들 사이에 유엔 사무총장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할 제10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뽑히기 위한 선거전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유엔 최초의 여성 수장 탄생을 바라는 목소리가 차츰 커지는 모양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유엔 산하 여성지위위원회(CSW) 개회식이 열려 아날레나 베어보크 유엔 총회 의장(전 독일 외교부 장관)이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아날레나 베어보크 유엔 총회 의장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개회식에서 연설했다. 유엔 창설 이듬해인 1946년 출범한 CSW는 전 세계에 걸쳐 여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개선함으로써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2025년 5월까지 독일 외교부 장관을 지낸 베어보크 의장은 유엔 80년 역사에서 사무총장은 항상 남성이 맡아 왔음을 지적하며 “문제는 왜 여성이 국제기구를 이끌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이미 80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왜 여성 사무총장은 안 되는지에 있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회원국들 정부를 향해 “이제는 여성을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할 때가 되었다”고 촉구했다.

 

베어보크 의장은 미국의 악명 높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사망)을 둘러싼 스캔들도 언급했다. 이는 엡스타인이 미성년자 성착취를 미끼로 세계 각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접근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다. 앤드루 전 영국 왕자(평민으로 격하), 피터 만델슨 전 주미 영국 대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엡스타인에게서 부당한 로비를 받았거나 최소 엡스타인과 부적절한 접촉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 연루 의혹도 제기한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인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왼쪽)과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엡스타인 스캔들을 “일부 남성에 의한 권력 남용”으로 규정한 베어보크 의장은 “권력도 돈도 없는 여성들에 대한 체계적 학대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엡스타인 스캔들과 여성 유엔 사무총장을 직접 연관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잘못을 시정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 유엔 사무총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엔의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 새 사무총장은 중남미·카리브 국가들에서 배출된다. 현재 미첼 바첼레트(74) 전 칠레 대통령,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인 라파엘 그로시(65)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레베카 그린스판(70) 전 코스타리카 부통령 등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이들 가운데 바첼레트와 그린스판 두 후보자가 여성이다. 유엔 외교가에선 바첼레트와 그로시의 ‘2파전’으로 보고 있으며, 현재로선 그로시가 앞서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