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왜 이럴까?” 사춘기 짜증, ‘중2병’ 아닌 ‘영양 부족’ 때문일 수도

뉴질랜드 공동 연구팀, 12~17세 청소년 대상 8주간 미량 영양소 복용 임상시험 진행
비타민·미네랄 섭취군서 짜증·감정 조절 개선 확인… 저소득층 및 기분 장애군서 효과 뚜렷
초가공식품 위주 식단이 영양 불균형 초래 경고, 다만 부작용 우려로 대규모 추가 연구 필요
사춘기 청소년의 극심한 감정 기복과 짜증은 뇌 성장기의 영양 불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사춘기’는 공포의 단어다. 이유 없는 짜증과 폭발적인 감정 기복을 마주하다 보면 대화는 단절되고 집안 분위기는 냉랭해지기 일쑤다. 

 

◆ 8주의 실험, 비타민·미네랄이 가져온 변화

 

11일 학계에 따르면 뉴질랜드 캔터베리대와 오타고대 공동 연구팀은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12~17세 청소년 132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들은 평소 중등도 이상의 과민성을 보였지만 항우울제나 각성제 같은 정신과 약물은 복용하지 않는 상태였다. 연구팀은 8주간 한 그룹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섞인 알약을, 다른 그룹에는 가짜 약(위약)을 먹게 했다.

 

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영양제를 복용한 그룹에서 짜증과 감정 조절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이다. 특히 감정 폭발이 심한 ‘파괴적 기분 조절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나, 상대적으로 영양 불균형에 노출되기 쉬운 사회경제적 환경의 청소년들에게서 효과가 더 뚜렷했다. 실험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심각한 감정 폭발을 보여 가정 내 갈등이 심했는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며 놀라운 변화를 전했다.

 

◆ 청소년기 뇌, 성인보다 더 많은 ‘연료’ 필요해

 

왜 영양소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연구를 이끈 줄리아 러클리지 박사는 청소년기의 특수성에 주목했다. 청소년기는 뇌가 급격하게 재구성되는 시기다. 신체적 성장만큼이나 뇌 내부의 신경 회로가 복잡하게 변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양 요구량이 성인보다 훨씬 높아진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건강 상태가 나쁘면 신체는 더 많은 미량 영양소를 소모한다. 이때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부족해지면 뇌 기능의 불균형이 생기고 이것이 극심한 짜증이나 우울감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이번 연구에서는 일부 청소년들의 자살 관련 생각까지 감소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사춘기 뇌 성장을 위한 '연료'가 부족할 때 생기는 일. 제미나이로 생성한 AI인포그래픽.

 

◆ 초가공식품 중심의 식단이 ‘마음의 병’ 키운다

 

연구팀은 특히 현대 청소년들의 식습관을 경고했다. 편의점 음식이나 패스트푸드 같은 ‘초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은 열량은 높지만 정작 뇌에 필요한 미량 영양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제 탄수화물과 당분이 높은 음식은 혈당을 급격히 올렸다가 떨어뜨리며 감정의 기복을 더욱 심화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영양 부족은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신경·정서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아이의 ‘나쁜 태도’를 나무라기 전에, 아이의 ‘식탁’에 무엇이 올라오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 영양제가 만능은 아니지만... ‘식단’부터 점검해야

 

물론 보충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알약’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일부 참가자에게 설사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으며 정기적인 상담과 관찰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영양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천연 영양소가 풍부한 균형 잡힌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사춘기 자녀의 짜증이 도를 넘었다면, 비난하기보다는 오늘 우리 아이가 뇌를 위한 충분한 영양을 섭취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미국 아동·청소년 정신의학회지’ 최신호에 게재되며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