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올해 공연 예정작들을 살피다 반가운 제목을 발견했다. 십수 년 전 봤던 연극의 재연 소식이었는데, 나는 이걸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본 공연을 놓쳐 동동거리는 걸 지인이 어렵게 표를 구해 앙코르 공연을,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봤던 기억이 선명했다. 동시에 나는 그날을 계기로 그와 영영 멀어졌다. 크게 반성한 나는 이후 ‘나 홀로 관객’이 되었다는 이상한 기억이 끝 자막처럼 붙어 있는 공연이었다.

연극은 나치 시대를 살았던 트랜스젠더 샤로테의 이야기였다. 배우 1명이 30인 이상의 역을 혼자 소화해 내는 모노드라마라 압박감이 상당했다. 대사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길 수 없을 만큼 스토리가 방대했고, 배우의 역할이 강렬한 동시에 미묘하게 빈 지점들이 있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난 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넘치는 부분을 주워 담고, 빈 지점을 채워 넣어야 했는데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인은 연극의 몇몇 부분에 대해 감탄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볼까?” 그는 공연장을 나섬과 동시에 두꺼운 커튼을 내려두고, 2장에 해당하는 크리스마스이브로 건너가려는 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전환되지? 나는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5분 전만 해도 샤로테와 함께 있었다. 어둑어둑한 무대에 서 있는 그녀의 그림자가 포악한 기억에 삼켜지는 걸 안타까운 마음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런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크리스마스라고?

 

아연한 기색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마도, 굉장히 무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몇 차례나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영화 엔딩크레디트를 끝까지 보지 않는 사람과, 공연이 끝나자마자 상사의 험담이나 연애사 같은 일상으로 겅중겅중 넘어가 버리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 시간표처럼 1교시 사회, 2교시 문학, 3교시 수학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나 혼자 이전 교과서를 펼쳐놓고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경쾌한 걸음으로 크리스마스로 건너갔는데, 나 혼자 어두운 무대 아래 남겨진 기분 말이다. 나는 점점 더 고독해졌고, 그는 아마도 불쾌해졌을 것이다. “왜 그래?” 그가 물었을 때 내가 그만 이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잠깐, 10분만 조용히 해줄래. 아까 본 장면에서 생각하고 싶은 게 있어.”

그는 식사하는 내내 침묵했다. 불편한 마음에 나는 연극에 대한 것도, 그에 대한 것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대화할 수 없다면 우리가 공연을 같이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나직이 말했다. “네게 대화가 아니라 생각이 필요하다면 혼자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대화와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한 사람을 잃게 된 뒤에야 비로소.

나 홀로 맞이하게 될 샤로테는 어떤 모습일까. 공연일을 체크해 두며 나는 그를 떠올렸다. 나의 무례에도 끝까지 정중했던 그의 얼굴과 영영 나누지 못했던 어떤 말들에 대해서.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