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연 예정작들을 살피다 반가운 제목을 발견했다. 십수 년 전 봤던 연극의 재연 소식이었는데, 나는 이걸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본 공연을 놓쳐 동동거리는 걸 지인이 어렵게 표를 구해 앙코르 공연을,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봤던 기억이 선명했다. 동시에 나는 그날을 계기로 그와 영영 멀어졌다. 크게 반성한 나는 이후 ‘나 홀로 관객’이 되었다는 이상한 기억이 끝 자막처럼 붙어 있는 공연이었다.
연극은 나치 시대를 살았던 트랜스젠더 샤로테의 이야기였다. 배우 1명이 30인 이상의 역을 혼자 소화해 내는 모노드라마라 압박감이 상당했다. 대사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길 수 없을 만큼 스토리가 방대했고, 배우의 역할이 강렬한 동시에 미묘하게 빈 지점들이 있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난 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넘치는 부분을 주워 담고, 빈 지점을 채워 넣어야 했는데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연한 기색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마도, 굉장히 무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몇 차례나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영화 엔딩크레디트를 끝까지 보지 않는 사람과, 공연이 끝나자마자 상사의 험담이나 연애사 같은 일상으로 겅중겅중 넘어가 버리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 시간표처럼 1교시 사회, 2교시 문학, 3교시 수학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나 혼자 이전 교과서를 펼쳐놓고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경쾌한 걸음으로 크리스마스로 건너갔는데, 나 혼자 어두운 무대 아래 남겨진 기분 말이다. 나는 점점 더 고독해졌고, 그는 아마도 불쾌해졌을 것이다. “왜 그래?” 그가 물었을 때 내가 그만 이렇게 말했으니 말이다. “잠깐, 10분만 조용히 해줄래. 아까 본 장면에서 생각하고 싶은 게 있어.”
그는 식사하는 내내 침묵했다. 불편한 마음에 나는 연극에 대한 것도, 그에 대한 것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대화할 수 없다면 우리가 공연을 같이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나직이 말했다. “네게 대화가 아니라 생각이 필요하다면 혼자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야.”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대화와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한 사람을 잃게 된 뒤에야 비로소.
나 홀로 맞이하게 될 샤로테는 어떤 모습일까. 공연일을 체크해 두며 나는 그를 떠올렸다. 나의 무례에도 끝까지 정중했던 그의 얼굴과 영영 나누지 못했던 어떤 말들에 대해서.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