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자사주는 자산 아닌 자본… 인식 바뀔 때까지 소각 의무화 유지해야” [세상을 보는 창]

상법 개정안 시행에 주주 권리 보호 본격화
회장님들 ‘주주는 동반자’라는 인식 가져야
소각 의무, 자본 차감계정 명시한 충격 요법
자사주 활용 경영권 방어 관행에 경종 울려

재계 요구하는 ‘포이즌필’ 허용은 시기상조
우리나라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수준 심각
과도한 상속·증여세 개편으로 밸류업 필요
주주 보호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도 시급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을 의무화한 상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 문턱을 넘어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이재명정부 출범 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힌 1차 개정,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담은 2차 개정에 이어 3차까지 상법 개정이 일단락됐다. 일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잇달아 개정된 상법의 여파는 이달부터 본격화하는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에서 뚜렷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주주 충실 의무 도입에 힘입어 주주 제안의 빈도와 강도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세질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사측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무력화하려고 꼼수를 부릴 것이란 우려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사 수에 상한을 두는 내용의 정관 개정안을 주총 안건으로 올린 기업이 적지 않다. 이사회 운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명분으로 이사 임기에 시차를 둬 순차적으로 선출되도록 하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하거나 이사 임기를 최대치인 3년으로 늘리려는 시도도 보인다.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오는 9월부터 일반주주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대변하는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데, 이들 정관 개정안으로 방해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3일 “주주환원의 목적은 결국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배당을 더 할지, 자사주를 매입할지, 재투자할지는 기업이 자본비용을 고려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지난 3일 서울대 사무실에서 만난 김우진(55)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 개정의 취지와 정반대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데 우려를 표했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 연구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아무리 법을 바꿔도 ‘회장님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이들은 오너가 아니라 주주의 돈을 받아 기업을 운영하는 수탁자, 즉 스튜어드로서 ‘주주는 동반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상법 1차 개정에 대해선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에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게 회사법 교수들의 일반적인 해석인데도, 우리나라는 판례가 그걸 인정 안 하고, 경영진과 외국인 투자자까지 일반주주 보호에 소홀해도 된다고 여기니까 법을 바꿔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3차 개정 논란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인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전언이다. 자사주 매입은 유상증자와 반대 개념이다. 회사의 현금이 줄면서 자본도 줄어드는 자본 거래다. 그런데도 그간 관행으로 자사주를 자산으로 취급해온 재계가 소각 의무화에 반발한다는 얘기다. 외국과 달리 우리 당국은 자사주를 시가총액에 포함시키고, 그 처분에는 세금까지 매겨 재계의 이런 오해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교수는 “자사주는 자본, 구체적으로 자본의 차감계정이라고 법에 명시한 게 3차 상법 개정의 의미”라며 “이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자사주는 자산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실해질 때까지 소각 의무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인식이 명확해지고 주주 충실 의무도 확실히 정착하면 소각 의무화는 더는 안 해도 된다고 본다”고도 했다.

자사주는 기업 지배구조와도 연관이 깊다. 김 교수는 “지배권 경쟁(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신주를 발행해 우호세력에 매각하는 게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며 “판례를 보면 신주의 제3자 배정은 재무구조 개선, 신기술 습득 등으로 제한하는데, 대신 자사주 활용은 봐줬다”고 전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나중에 활용할까 싶어 자사주를 많이 갖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기업은 그간 자사주 보유·매각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항하는 방패로 활용해온 게 사실이다. 소각 의무화로 투기자본의 공세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빗발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처분이 신주 발행처럼 엄격하게 제한된 만큼 이제는 신주를 좀더 수월하게 발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정부가 권고한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를 불가피하게 떠안거나, M&A 성사를 위해 취득했다면 소각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합병하는 시점에서 자사주는 정리했어야 한다. 자사주를 자산이라고 본 탓에 소각하지 않은 것이다. 중소기업에선 자사주 보유를 예외적으로 인정해달라는데, 상장으로 자본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만큼 그들을 보호해줄 의무도 생기는 거다. 내가 돈이 모자라 동업자 ‘n명’을 받았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남의 돈으로 장사하면 그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거다.”

―재계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 허용을 요구한다.

“미국이라고 포이즌필이 무조건 인정되는 게 아니다. 법원은 적대적 M&A 세력이 약탈적이라 기업을 지배하면 전체 주주의 이익이 피해를 볼 사례에만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더구나 미국엔 우리처럼 20∼30% 지분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지배주주도 거의 없다. 회장님의 지분, 이른바 ‘한국식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수단이 아니다. 발상부터 다르다. 우리나라는 주주 충실 의무 도입이 초기 단계고, 방어 수단이 보통 지배주주의 지분을 보호해주는 쪽으로 해석되는 탓에 포이즌필 도입은 시기상조다. 쿠팡이 미국에서 상장한 이유가 차등의결권 보장 때문이라고 알려졌는데, 난 아니라고 본다. 미국 투자자도 차등의결권 발행을 좋아하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미국에선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밸류에이션(가치평가)도 높게 받아 창업자 입장에서 지분 희석이 덜 되니까 가는 거다.”

―여당은 이달 국회에서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 처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도 자본시장 정상화를 위한 추가적인 제도 개혁으로 강조한 바 있다.

“상당수 상장 기업이 일감을 계열사에 몰아주거나 합병비율을 활용해서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대주주가 들고 있는 지주회사 주식은 승계용이지 팔 게 아니라서 주가가 낮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기업은 대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가치보다 주가가 낮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시가로 상속·증여세를 매기니까 주식을 물려줄 때 PBR이 1배 미만이면 유리하다. 제가 우리나라 지주회사의 디스카운트(저평가)를 연구한 결과 심각한 수준이더라. 예를 들어 삼성물산이 자회사인 삼성전자의 일부 지분(작년 9월 기준 5.05%)을 들고 있는데, 삼성물산 전체의 시총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의 시총보다 작다. 상식적으로 보면 삼성물산은 자기 비즈니스가 있으니 시총이 당연히 더 커야 한다. 그만큼 삼성물산 가치가 저평가된 거다. 그런 지주회사가 우리나라에 70∼80개가 된다. 팔 게 아닌 지주회사 주식일수록 디스카운트는 더 심하다.”

―주가 누르기 방지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PBR 0.8배 미만인 기업에 순자산 장부가치의 80%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부과하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재계 우려가 크다.

“개정안대로라면 세금이 늘어나니까 굳이 주가를 누를 유인은 없어지는 건 맞다. 사실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이 너무 높은 데서 나온다. 최고세율이 50%로 주식 상속 때 20% 할증까지 더하면 60%나 된다. 과도한 상속세율도 같이 손을 대야 한다. 스웨덴은 아예 없앴고, 대만도 낮췄다. 낮추지 않는다면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자체가 공허해진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소송 전이나 과정 중 당사자 간 서로 가진 증거와 서류를 공개해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증거개시제도) 도입도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상법 개정으로 주주 충실 의무가 도입됐지만, 대주주와의 이해 충돌로 손해를 본 일반주주가 소송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민사소송의 원고인 일반주주의 증거 확보를 쉽게 해주는 게 디스커버리 제도다. 이 제도가 없어서 우리나라에선 원고가 고소나 배임으로 먼저 걸기 일쑤다. 그러면 검사가 압수수색할 수 있게 되고, 거기에서 나온 증거를 갖고 민사소송을 낸다. 국가기관이 민사소송용 증거 확보를 위해 남용되는 게 아니냐. 전에 LG가 SK를 상대로 미국에서 배터리 관련 소송을 낸 적 있다. 당시 애국심 있는 분들은 한국 회사끼리 일인데 왜 미국 법정까지 가서 싸움질하느냐 했다. 미국 민사소송에선 원고가 훨씬 유리해서다. 우리 사법체계가 민사소송 원고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해 미국 제도를 빌린 것이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반성 많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