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종목이 전체 증시 흔들고 수출 낙수효과 없는 성장 구조 에너지 충격에 지나치게 민감 경제 체질 바꾸려는 노력 필요
‘박스피’라 불리던 코스피가 5000선에서 6000선까지 올라가는 데 겨우 한 달 걸렸다. 그러나 사상 최고점인 6300선(2월26일 6307.27)에서 5100(3월4일 5093.54) 아래로 떨어지기까지는 불과 3거래일 걸렸다. 상승할 때 가속페달을 밟은 정도였다면 하락할 때는 급발진 수준이었다.
증권가에선 코스피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탓에 하락폭도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수입한 원유의 70%는 중동산이라는 점도 폭락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수미 경제부장
하지만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95%가 넘는 일본은 우리 증시보다 타격을 덜 받고 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을 시작한 2일과 3일 1∼3% 하락하는 데 그쳤고,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한 9일 5.2% 빠진 것이 최대폭이다. 반면 코스피는 지난 3일 12% 넘게 떨어졌고, 중동 사태 이후에만 사이드카 5번, 서킷브레이커가 2번이나 발동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코스피가 2000선에서 6300까지 현기증 날 만큼 빠르게 오른 것을 단순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나 정부 증시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 수출 호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반도체 쏠림과 포모(FOMO·소외 공포)를 연료로 삼았던 불안한 랠리가 이란 공습의 유탄을 맞고 한국 경제의 취약한 구조를 드러낸 것이다.
코스피를 6300까지 끌어올린 주역은 단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투 톱’이었다.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이는 미국 S&P500에서 상위 7개 기업(M7)의 비중(32.7%)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과도한 반도체 쏠림은 포모를 자극해 역대 최대 규모인 33조6000억원의 ‘빚투’로 이어졌다. 증시 급락으로 반대매매(강제 청산)가 본격화하면서 빚투는 증시 하락의 뇌관을 넘어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반도체 쏠림은 수출 역시 역대 최대로 끌어올렸지만, 고용이나 내수로 온기가 퍼지는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신규 일자리는 1년 전보다 25만개 줄면서 통계 집계 이래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고, 내수 경기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음식업과 부동산임대 사업자 수는 20개월 넘게 감소했다. 반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일자리가 줄며 지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110달러를 넘어서면서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에 육박하고, 3년물 국고채 금리는 3.2%까지 뛰었다. 고유가·고환율·고금리, 이른바 ‘3高 쇼크’다. 문제는 3고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고 그 결과 성장률은 떨어지지만 물가는 내려오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를 떠올려 보자. 당시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인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수출 통제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고, 결국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주요국 경기를 침체 직전까지 몰아넣은 바 있다. 우리나라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치솟았고, 기준금리는 0.5%에서 3.25% 수준까지 올랐다.
지금 중동발 위기는 그때보다 우리의 원유 수입 의존도가 큰 데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원유 창고를 공격하는 등 에너지 공급 경로가 직접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협적이다. 간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쟁 조기 종식 발언을 하면서 증시는 10일 다시 반등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언제 다시 방향을 틀지 알 수 없다.
정부는 100조원 규모로 마련된 시장 안정프로그램을 가동하는 한편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를 꺼내는 등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동발 화염이 퍼지는 것을 끄기 위한 단기 조치일 뿐이다. 일부 종목이 전체 증시를 흔들고, 수출이 늘어도 고용과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성장 구조 그리고 에너지 충격에 지나치게 취약한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