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언 후 유가 80달러대 급락… 조기종전 기대·불신 교차 [美·이란 전쟁]

전쟁 장기화 갈림길

G7 비축유 방출 기대와 맞물려
유가 진정됐지만 또 급등 가능성
“충분히 못 이겨” “전쟁 목표 달성”
트럼프 오락가락 발언 혼란 가중

트럼프 “이란 미사일 90% 제거”
선거 앞서 출구전략 모색 가능성
이란 “석유 1ℓ도 못 나간다” 강경
국제경제 압박 통한 버티기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의 조기 종료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해 전 세계는 기대감과 불신이 교차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도럴 리조트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란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발언했지만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이미 이겼지만 충분히 이기지 않았다”면서 추가적인 전쟁 지속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자회견 이후에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안에서 석유 흐름을 막는 조치를 취하면 지금까지보다 20배 더 센 타격을 당할 것”이라고 추가 타격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도럴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란과의 전쟁에 대해 “매우 빨리 끝날 것”이라고 밝히며 장기전으로 인한 고유가 우려 불식에 나섰다. 마이애미=AP연합

전쟁이 ‘종료 수순’이라면서도 추가 타격을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순된 발언에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들은 ‘갈팡질팡(Zigzag) 발언’이라면서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이후 전쟁이 4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일정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후 “그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 등으로 말을 뒤집는 등 일관되지 않은 발언을 지속해서 해왔다.



이번 발언은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이 120달러에 육박하는 등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해 제기된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를 진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아직 이란 전쟁이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구두개입을 했다는 것이다. 안정세를 찾던 미 국채금리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다시 급등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진화에 나서게 한 요소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과 무역갈등 때도 국채금리가 급등할 때마다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중동 상황에 따라 유가와 국채금리 급등은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과 주요 7개국(G7) 국가들의 전략 비축유 방출 가능성 등으로 국제유가가 80달러대로 재진입하는 등 빠르게 안정화됐지만 전문가들은 전쟁이 지속할 경우 언제든 다시 130~150달러까지 반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채금리 역시 전쟁 양상에 따라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유가 재급등과 인플레이션 점화로 자칫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가 지연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위해 내세운 ‘저금리·저유가 환경 조성’ 전략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해외 개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지속해서 내비쳐온 마가 세력의 이탈도 가속화될 여지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책사들이 “미국이 전쟁에서 빠질 계획을 수립하고 미군이 전쟁 목표를 대체로 달성했다고 정당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언을 며칠간 해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지지층에서 여전히 작전 개시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전쟁이 더 길어지면 지지가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직면한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단기전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체제 교체라는 기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출구전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공영방송인 PBS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미사일 발사능력이 90% 이상 제거 등 전쟁 성과를 강조하며 “모든 목표가 달성됐다”고 발언한 부분을 주목하며 “군사적 목표가 추가 달성되면 이를 명분으로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미국이 전쟁 종료를 선언하더라도 실제 전쟁이 끝나지 않을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란이 지속적인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전쟁의 끝을 결정하는 건 (미국이 아닌) 우리”라고 성명을 낸 것도 이 일환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지 않으면 미국의 출구전략은 사실상 틀어막히게 된다.

이미 이란은 국제경제 불안을 우려한 국제사회가 미국을 압박하도록 하겠다는 자신들의 구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외교정책 고문인 카말 하라지는 이날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경제적 압박이 커져 다른 국가들이 개입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도록 보장하는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외교의 여지는 없다”면서 “전쟁이 계속될수록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부족 측면에서 다른 나라에 경제적 압박이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른 국가들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은 군사적 수단이 아닌 잔혹한 인내력 대결로 전쟁을 끌어가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견디는 쪽이 승리할 수 있다고 내기를 하는 중”이라고 평했다.

이스라엘도 변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 영상 연설을 통해 “훨씬 더 많은 목표물을 확보하고 있으며 더 많은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는 등 전쟁 지속 의지를 밝히고 있다. 미 싱크탱크 근동정책연구소 마이클 싱 소장은 “미국은 장기 분쟁에 대한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스라엘은 이란 성직자 정권이 영구적으로 약화하길 원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