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의 원천 화석에너지 단순 연료 아닌 국제분쟁 씨앗 석유에 대한 의존도 줄일수록 세계 평화로 가는 길 가까워져
전쟁의 뉴스는 언제나 숫자로 전달된다. 숫자 속에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지난 2월 28일 오전 10시 45분 테헤란 남부 미나브 지역의 샤자레 타예베 여자초등학교에 토마호크 미사일이 떨어졌다. 그리고 168명의 여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아침에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그날 아이들은 언어와 수학 그리고 과학을 배우고 친구들과 뛰어놀기 위해 학교에 갔지 미사일의 굉음 속에 목숨을 잃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라 해도 분노와 슬픔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전쟁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세계는 또 하나의 숫자를 확인한다. 바로 유가다. 중동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국제 원유 가격은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석유가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와 선박, 자동차가 움직이고 공장이 돌아가며 플라스틱과 화학 제품이 만들어지는 데 석유가 쓰인다. 세계가 소비하는 에너지 가운데 상당 부분이 여전히 석유와 가스에서 나온다. 그래서 중동의 긴장은 단지 지역의 분쟁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 된다. 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핵심 변수다.
석유는 아주 오래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물질이다. 가끔 공룡 시체가 모여 석유가 되었다는 주장이 떠돌지만 터무니없다. 수천만 년 전 바다에 살던 작은 생물들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석유가 시작되었다. 플랑크톤과 미세한 해양 생물들이 죽어 바닷속에 쌓이고 그 위에 퇴적물이 덮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유기물은 깊은 지층 속에서 열과 압력을 받으며 천천히 변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석유와 천연가스다. 말하자면 석유는 오래전에 살았던 생명들의 흔적이 압축된 화석 에너지다. 자연은 그 에너지를 만드는 데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을 사용했다.
인간은 그 축적된 에너지를 겨우 몇 세기 만에 꺼내 소비하며 인류 문명을 크게 바꾸었다. 석탄이 19세기 산업혁명의 불씨였다면 석유는 20세기 문명의 연료였다. 자동차와 항공기, 플라스틱과 현대 화학 산업이 모두 석유 위에서 성장했다. 덕분에 우리는 이전 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속도로 이동하고 물건을 만들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에너지는 또 다른 그림자를 만들었다. 석유가 있는 곳은 늘 국제정치의 중심이 되었고 때로는 분쟁과 전쟁의 빌미가 되었다. 걸프전에서부터 수많은 중동 갈등까지 석유는 세계 질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유가가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21세기를 시작한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이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태양과 바람에서 얻는 에너지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석유가 차지하는 자리는 여전히 크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 위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전쟁의 이유가 되는 시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햇볕과 바람은 어느 한 나라의 땅속에만 묻혀 있지 않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봉쇄할 수 없는 에너지다.
물론 에너지 전환이 곧바로 전쟁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갈등은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 줄일수록 평화로운 세계로 가는 길은 더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하다. 석유를 둘러싼 경쟁과 긴장이 줄어든다면 국제정치의 풍경 역시 조금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교실의 잔해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떠올려야 한다. 21세기 아이들이 배워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미래가 전쟁과 유가 그래프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햇볕과 바람 그리고 서로를 향한 협력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 말이다. 아이들이 들어야 할 소리는 폭격기의 굉음이 아니라 운동장의 웃음소리여야 한다. 전쟁의 뉴스 대신 평화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날을 바란다면 우리는 에너지와 문명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