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의 국도변에 낡은 간판을 단 자영 주유소 입구에 ‘ℓ당 1940원’이라는 숫자가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알뜰주유소보다 ℓ당 50원 비싼 휘발유값에 주유소 마당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입간판 가격을 휙 쳐다보곤 약속이라도 한 듯 핸들을 꺾어 알뜰주유소로 향했다.
이곳에서 10년째 주유소를 운영 중인 김모(40대)씨는 “기름값이 오르면 매출이 늘어날 줄 알지만 사실 남는 건 몇 푼 안 된다”며 “가뜩이나 기름값으로 예민한 상황에 손님들이 10원 차이에 떠나가니 가격을 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해 일반 영세 주유소는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중동발 전쟁과 환율 상승이 겹치면서 기름값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자영 주유소들이 폐업조차 망설이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ℓ당 10~20원 단위의 가격 전쟁에서 밀려난 자영 주유소들이 영업을 중단하고 싶어도 수억원에 달하는 시설 철거비와 토양오염 정화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적자 운영을 버티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차 시장이 확대하면서 경영에 한계를 느낀 업주들은 폐업까지 검토하지만 걸림돌이 많다. 막대한 환경정화 비용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주유소를 폐업하려면 지하 저유 탱크와 배관을 철거하고 기름 유출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해야 한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주유소 한 곳당 평균 폐업 비용은 시설물 철거비와 토양 정화비를 합해 2억원에 달한다. 결국 폐업 자금이 없어 영업을 계속하거나 대책 없이 간판만 내린 채 휴업 상태로 방치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방치된 주유소는 도심 속 흉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경영난에 의한 휴업 주유소는 2020년 97곳에서 2022년 188곳, 2024년 139곳, 2025년 214곳 등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장기화는 물론 전기차 전환 가속화로 주유소의 자연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안정적인 퇴로를 마련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주유소의 폐업은 토양오염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며 “이제는 업주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폐업 지원 기금 마련과 정화 비용 국고 보조 등 국가 차원의 안전한 퇴로를 고민해야 할 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