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의사/잭 엘하이/채재용 옮김/히포크라테스/1만8000원
TV로 중계되는 12·3 내란 재판을 보노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나치 전범들도 그랬다. 신간은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앞두고 전범 22명의 곁에 파견된 미국 육군 정신과의사 더글러스 맥글래션 켈리 대위의 이야기다. 러셀 크로우·라미 말렉 주연 영화 ‘뉘른베르크’의 원작이기도 하다.
그에게 맡겨진 공식 임무는 단순했다. “수감자들이 최종 처분을 받을 때까지 재판을 치를 수 있도록, 그들의 정신상태를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야심찬 정신과의사였던 켈리에게는 개인적 목표가 있었다.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서 ‘공통된 결함, 악행을 서슴지 않는 성향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관된 악마적 면모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루프트바페(독일 공군) 초대 총사령관이자 나치 독일의 이인자 헤르만 괴링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지적 매력에 빠져든다.
괴링은 제국의회 의장, 프로이센 수상, 제국 원수 등 수많은 직함을 거머쥔 인물로, 법정에서 유대인 말살 ‘최종 해결책’을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해 좌중을 경악시켰다. 심지어 히틀러조차 마찬가지였다는 주장을 폈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괴링은 끝까지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데칼코마니 형태의 잉크 반점을 활용하는 로르샤흐 검사에서부터 재판 전 과정까지, 책은 전범들의 인간상을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되살린다. 총통 대리 루돌프 헤스, 반유대 신문 ‘돌격수’ 발행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동부 제국 장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등 전범들의 면면도 집중적으로 그려 독자들을 악의 실체 가까이로 이끈다. 저자는 역사적 자료와 추가로 입수한 문서들, 그리고 켈리의 아들 더글러스 켈리 주니어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뉘른베르크의 결정적 장면들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