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전쟁으로 희생된 아이 영원히 ‘안락한 요람’ 못 돌아가 병동의 환자들도 늘 ‘집’ 염원 돌아갈 곳 있다는 건 소중하다
우리는 매일 집으로 돌아간다. 집은 늘 거기 있기 때문이다. “집은 커다란 요람이다. … 삶은 그 품속에서 시작된다.”(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그래서 우리는 의심 없이 그곳을 향한다. 최근 이렇게 당연해야 할 한 아이의 귀가가 사고로 좌절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13살 소년이 미니 승합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다. 가족이 기다리던 안락한 요람에 닿지 못하고 길에서 떠난 소년의 사고는, 어처구니없게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났다.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말이 너무도 무색한 사고다. 어른들이 무너뜨린 질서 때문에 한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이란에서는 175명의 어린 학생들이 영원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과정에서, 이란 남부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가 폭격을 당한 것이다. 수업 중에 일어난 끔찍한 폭격으로 학교는 한순간 폐허가 되었고 175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건물 잔해의 휘어진 철근 사이를 수색하는 모습과 촘촘한 열로 이어진 아이들의 무덤은 충격적이다. 특히 아이의 엄마가 사진을 들고 통곡하는 모습과 피에 젖은 가방은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실에 있던 아이들의 공포를 짐작만 할 뿐이다.
천수호 시인
“이건 모하나의 수학책이에요. 1학년이죠. 모하나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인터뷰이의 손에 들린 알록달록한 수학책은 주인을 잃었다. 전쟁은 이렇듯 가장 약한 일상의 공간을 먼저 파괴한다.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고 국제사회의 분열을 키우는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지금의 미국·이란 전쟁이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점점 격화되고 있다. 그 속에서는 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공간조차 지켜지지 못한다.
최근에 본 한 전시에서는 집과 대척점에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집처럼 보호받지만 집만큼 안락하지 않은 곳, 요람처럼 천진하게 눕기보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 더 일상이 되는 공간이다. 이 전시는 옛 ‘국립정신병원’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전이다.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갤러리M에서 열리는 사진전 ‘복원-기억의 지층 위에서’다. 사진가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이현권의 20년 전 흑백 사진전이다. 당시 청년이던 이현권 작가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이 병원 안팎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 사진들 앞에 서면 묵직한 고독감이 엄습한다. 집을 떠나 정신병동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의 깊은 고립감이 흑백의 사진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흑백의 명암 속에서 환자들이 바라보던 허공과 병동의 그늘이 겹친다.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 벽에 걸쳐진 사다리는 도대체 어디로 통하게 되는 것일까. 고개를 숙인 환자가 오르고 또 오르고 싶은, 닿지 못할 세계 같기도 하다. 수수망태처럼 얽힌 겨울 나뭇가지의 창밖 풍경은, 창 안에 격리된 환자가 겪는 매 순간의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병원의 하얀 건물은 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세계에 빠진 그들의 뒷모습을 단호하게 차단한다. 이곳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그 안의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공간이다. 20년이 지날 동안 건물의 외형은 바뀌었지만, 그 안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환자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일까. 국가의 관점에서는 철저히 보호해야 할 공간이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격리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입원환자에게 병원은 하루에도 수십 번 뛰어넘고 싶은 벽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사진 속의 병원도 우울하고 무겁게 보일 수밖에 없다. 사진 속 시간은 멈춰 있지만, 스무 해 전의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때의 갈망처럼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밝은 창을 마주하고 함께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웃고 있기를 상상해 본다. 우리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가. 좁은 아파트의 베란다 문을 밀고 3월의 햇빛을 흠뻑 받아안는다. 우리가 믿는 안전이 환상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기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