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어떤 영화를 보기 전에 문득 떠오르거나 우연히 다시 찾아 읽게 된 글귀가 잠시 떨어져 나갔던 조각처럼 그 영화와 맞붙을 때가 있는데 니콜 크라우스의 장편 소설 ‘사랑의 역사’도 그렇다. 크라우스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매일 죽음에 대비하며 느끼는 고독을 인간의 신체와 장기에 빗댄다. ‘망각의 고통은, 등뼈다. 기억의 고통도, 등뼈다. (…) 누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고 믿는 실수를 저지르던 그 모든 시절, 그 모든 시간은 치핵이 맡는다. 외로움, 그것을 전부 받아들일 만한 내장은 없다.’
SF 영화 ‘마션’의 원작자이기도 한 앤디 위어가 쓴 신작 소설을 영화화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미지의 세포가 태양을 갉아먹으며 종말을 향해 가는 지구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임무의 이름이다. 중학교 교사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기억을 잃은 채로 우주 한가운데서 깨어난다. 오랜 코마에서 눈을 떠 일어나 보니 그 이외에 단 둘뿐이었던 동료의 몸은 우주선의 캡슐 안에서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지구에서 수백 광년은 떨어진 우주에서 홀로 살아남은 그레이스가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완전한 고독을 맞이하며 시작한다.
이것이 SF 영화의 유일한 경향은 아닐 테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서사는 인간의 외로움과 고립을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진공의 우주에서도 완전한 고독의 서사는 있을 수 없다. 우주에 남은 인류는 혼자여서는 안 되는 양 환영과 기억을 불러내고 자기 역사와 마주하거나 어떤 존재와 조우한다. 프로젝트의 유일한 생존자인 그레이스는 ‘솔라리스’나 ‘애드 아스트라’의 주인공처럼 울적한 환영이나 과거의 상념에 빠지는 대신 우주의 다른 존재와 만나 교류를 시작한다. 신체의 어느 부위가 얼굴인지 알 수 없는 지적 외계 생명체 로키와 그레이스는 서로의 언어를 학습하고 번역을 거쳐 소통하며 친밀해진다. SF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써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장점은 아서 C 클라크의 존재론적 진지함과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낙관주의를 모두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소리의 파동조차 없는 적막한 암흑 속에서 홀로 남는다는 상상은 인간의 완전한 고립과 고독에 대한 비극과 공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소설과 영화와는 달리 인간의 신체와 기억은 외로움과 고독의 서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로 시선을 옮기면 이 고독의 서사는 끝까지 지속될 수 없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그레이스가 맞닥뜨리는 우주는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뜻밖의 만남이 발생하는 장소다. SF 영화에서 우주는 인간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장소라기보다 어떤 만남을 준비하는 무대처럼 보인다. 광막한 우주에서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마저도 완전히 홀로 남겨두지 못하는 이 장르의 오랜 충동은 결함이 아니다. 그래서 어쩐지 외로움을 전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우주에서 펼쳐지는 SF 서사인 것만 같다.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