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 등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하면서 가뜩이나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발 오일쇼크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산업계에 관세 부담까지 엎친 데 덮친 모양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대체할 수단으로 301조 카드를 꺼내 들면서 관세 압박이 다시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조사는 효력을 잃은 상호관세를 복원하기 위한 수단인 만큼 한국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12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사가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철강과 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이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이 이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자동차(15%) 등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서다.
특히 석유화학업계는 중동 사태 여파로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지인 여천NCC의 ‘불가항력’ 선언에 이어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다른 업체들도 불가항력 가능성을 잇달아 통보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인 반도체나 의약품 등도 향후 관세 부과 시 최혜국대우를 받는 것으로 합의된 품목이다.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은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이번 조사에서 제조업의 구조적 과잉 생산을 지목하고 있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의 문제 제기 논리를 보면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가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인다”며 “두 산업은 과잉 설비, 낮은 수익성, 구조조정 필요성 등 미국이 제기하는 논리를 적용하기 쉬운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 원장은 “미국이 조사 결과 한국 산업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준다고 판단하면 추가 관세 부과, 수입 물량 제한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다만 자동차나 반도체처럼 미국 내 투자가 중요한 분야는 단순 관세 부과보다 현지 생산 확대, 공급망 이전, 투자 확대 등을 협상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조치는 관세만이 아니라 시장 접근 제한과 투자 확대 요구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난해 한·미 관세 합의 내용에서 추가로 우리 경제에 부담되는 형태의 결과가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무역 구조로 볼 때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일부 대미 수출품에 대한 301조 조사에서 한국이 미국에 심각한 불공정 무역을 했다는 판단이 내려져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 다른 국가보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받을 확률은 낮다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합의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고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긴급 브리핑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상호관세) 위헌 결정 이전의 관세 수준으로 복원하기 위해 301조를 활용하겠다는 정부 구상을 여러 차례 저희에게 설명해 왔다”면서 “긴장을 놓지 않고 미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국익을 최대화하도록 협의하겠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철회하기 어려운 정치적 환경이 존재하고, 보호무역을 지지하는 정치적 흐름도 여전히 강한 점에 비춰 “한국을 포함한 대상국에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미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전망도 있다.